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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희망이 세상을 바꾼다 /탁석산

경제위기 극복보다 133층짜리 건물보다 지금 더 필요한 것은 희망과 자긍심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4-06 20:29:5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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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암동에 133층 고층 건물이 2015년에 들어선다고 한다. 8만6000명을 고용하고 생산유발 액수는 11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 들어선다고 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서울의 상징이 될 것이며 많은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을 것이고 빌딩을 중심으로 많은 비즈니스가 생겨날 터이니까. 지금 우리는 경제 위기 극복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어떤 방안이라도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좋은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과연 그럴까? 경제 위기 극복 방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까? 있다. 경제 위기 극복 방안보다 더 필요한 것은 희망과 자긍심이다. 쉽게 말해서 초고층 빌딩보다 희망과 자긍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망은 소리 없이 자라기도 하고 소리 없이 죽어 절망이 되기도 한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내 집 마련이라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살았다. 자주국방, 민주화도 우리의 희망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희망은 무엇인가? 선진국 진입인가 아니면 경제 위기 극복 후의 풍요로운 삶인가. 지금의 희망은 아마도 좀 더 자랑스러운 사회에 살고 싶은 게 아닌가 싶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이제는 좀 더 자신이 사는 사회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가난하고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마음에는 자긍심이 있고 뿌듯함이 있는 삶이 낫지 않은가. 능력대로 대접 받아야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부패는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사회, 사회 지도층은 기대만큼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좋지 않은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돈이 없어도 충분히 교육 받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사회, 집안 배경이 없어도 사회에서 출세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회, 자신만 똑똑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의 희망은 경제적 지표라는 수치에 달려 있지 않다. 희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요즘 언론을 장식하는 대부분의 뉴스는 우리에게서 희망을 앗아 가고 있다. 대표적인 두 가지 리스트를 보자. 박연차 리스트를 통해 우리는 깨끗한 것 하나는 자부한다고 했던 지난 정권의 부패를 보고 있다. 독재정권의 부패나 민주화 투사의 아들들의 부패를 보아왔기에 만성이 된 것 같기도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소위 좌파 정권이라고 불리던 전 정권은 도덕적 우월함을 무기로 거의 모든 문제를 재단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쨌든 한 번은 청소해야 한다는 데에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는데 뒷모습은 너무나 실망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장자연 리스트는 또 어떤가. 이제는 더 이상 추악한 거래는 없다고 여러 차례 연예계 사람들이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사건으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텔레비전의 멋진 화면 뒤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일반 시민보다 훨씬 졸렬하고 치사한 지도층의 모습이 우리에게서 희망을 빼앗아 가고 있다.

물론 때때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일들이 있다. WBC에서의 감동적인 승부들, 김연아 선수의 우승 등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도 하면 된다는. 하지만 이런 희망은 반짝하고 만다. 야구 잘한다고 스케이트 잘 탄다고 사회의 구조가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반짝 희망은 위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희망에 목말라 있기에 위로를 희망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리스트가 보여주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이며 고질적인 타락이다. 이것을 운동선수가 주는 위로로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세금 감면 같은 위로가 아니라 세제 개혁과 부패척결이 되리라는 희망이 필요한 것이다. 세금 몇 푼 돌려준다고 희망이 생기겠는가. 그것으로는 위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브이 포 벤데타'라는 영화가 있었다. 미래의 독재체제 하의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영화 마지막에 국회의사당을 폭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꼭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말한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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