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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마음속에 켠 연등 /정찬주

인생을 위한 참행복의 의미 되돌아보는 초파일 되었으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5-01 21:31:4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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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긴 외출에서 돌아와 산방 안팎을 살펴보고 있다. 상추는 싹이 텄는데 아직도 호박과 오이, 열무와 쑥갓은 소식이 감감하다. 고추 모종은 초파일 이후에 심으려고 두둑만 만들어 둔 상태이다. 산방 화단 뒷줄에서 자라는 흰 철쭉은 만개해 있고, 앞자리의 모란은 이제 막 피어나고 있다. 연못의 수련도 잎들이 기세등등하게 파래지고 있다. 초파일 전후해서 수련이 피어나는데 올해는 늦다. 연못은 작은데 수련이 너무 과밀하게 뿌리를 뻗어 스스로 약골이 된 탓이다. 도시가 거대해지면 인구분산 정책을 쓰듯 연못의 수련도 방문한 손님에게 한 뿌리씩 선물하여 성장환경을 편안하게 바꿔줘야 할 것 같다.

연못에 도롱뇽 유생(幼生)들이 많이 컸다. 그 검은 빛깔의 생명들이 내가 사는 공간을 1급 청정지역이라고 보증해주는 것 같아 고맙다. 세존께서는 모든 존재를 연기의 도리로 보아 한 몸이라고 설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 하더라도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살지 못한다면 인간은 이미 알게 모르게 병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불행을 자초하는 미련한 짓이다.

이번 외출은 안국선원의 수불스님을 뵙기 위해 떠난 길이었다. 이번까지 스님을 다섯 번째 뵈었다. 맨 처음에는 '응당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부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신심이 솟구쳐 나섰던 것으로 기억된다. 좀 더 길게 얘기한다면 이런 사연에서였다. 지리산 벽송사를 들를 때마다 절이 쇠락하고 대중이 없어 쓸쓸하기 짝이 없었는데, 월암스님이 주석하면서부터 도량의 선방과 가람들이 중창되더니 재가불자들을 위한 선수행의 진원지가 되고 있었다. 벽송사에 선풍을 일으킬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은 분이 바로 수불스님이었다는 월암스님의 얘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더욱 놀라운 일은 월암스님과 수불스님은 벽송사를 중창하기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고 한다. 불가의 한 문중도 아니고 동문도 아니라고 한다. 한국불교의 선수행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의지만 간절했는데, 참선수행 위주로 정진하는 안국선원의 신도들이 두 분의 뜻에 공감하여 수십억 원을 모금했던 것이다.

기적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갈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불스님은 또 다시 신도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조계종 특별선원으로 지정된 봉암사 불사에도 마음을 내겠다고 한 일이다. 국제선센터를 건립하기 위해 봉암사 앞산 일대를 매입하려고 하는데, 봉암사 대중의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수불스님이 일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안국선원은 울타리가 없는 절 같다. 수불스님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어느 절, 어느 문중, 어느 신도 등등의 담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안국선원에 갈 때마다 '내'라는 소유격을 털어버린 무소유의 향기를 맡는다. '내 것'에 집착하지 않는 무아를 체득한 운수납자에게는 광대무변한 우주가 선방이고 법당인 법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것'을 위해 울타리를 만들고 허상의 그림자를 좇는다.

얼마 전의 일이다. 산방을 나서는데 텃새인 직박구리 한 마리가 현관 바닥에 죽어 있었다. 현관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현관 유리창에 투영된 소나무를 보고 달려들다 사고를 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직박구리를 느티나무 그루터기 옆에 묻어주고는 어리석은 사람도 죽은 새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본질이 아닌 헛된 그림자를 보고 달려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권력이나 돈, 명예 같은 것이 결코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본질은 아닌 것이다.

이번 초파일에는 연등 아래 앉아서 무엇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기보다는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하고 자신의 본래면목에 대해서 깊이 자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 아마도 난생 처음 가장 어려운 문제 앞에 직면해 있음을 절감할 터이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연등이 켜지면 미망의 어둠은 단박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각자의 마음 속에도 연등이 하나씩 켜지는 초파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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