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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주공원을 부산의 랜드마크로 /정지창

역사에 대한 평가는 이분법으로 안돼

공적은 인정하되 민주화운동도 중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9-13 20:34:5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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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민주공원이 버스 안내표지판과 승강장 이름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허탈감에 빠졌다. 더욱이 올해는 민주공원이 생긴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고, 부마항쟁 30주년이 되는 해가 아닌가. 유신독재의 철벽을 허문 자랑스러운 부마항쟁의 전통을 대중의 기억에서 지우는 일을 손바닥 뒤집듯 해치우는 것을 보고, 과연 역사적 평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곱씹어보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안내표지판의 정거장 이름 하나를 바꾸는 행정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부산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에 관련된 사안이다. 표지판을 바꾸라는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결정을 내리기 전 적어도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공청회나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 아닌가.

이번 사태는 역사교과서를 국민적 합의나 역사학자들의 동의 없이 교과부의 주문대로 수정했다가 법원에서 위법 판정을 받은 일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과 역사에 대한 평가까지 행정관료들이 제멋대로 뜯어고쳐도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잠시 권력을 위임받은 특정 정권이나 집단이 이해관계나 입맛에 따라 일시적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불편한 진실을 덮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를 영구적으로 왜곡하거나 진실을 영원히 덮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임기나 시한이 없고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이다.

유신독재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민주화운동을 좌파들의 이념투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들은 유신시대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한 덕분에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이 사실이 아니냐고 묻는다. 또 새마을운동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수출 드라이브 정책 등 유신시대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하고, 부마항쟁을 비롯한 반(反) 유신독재 민주화운동을 부각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번 표지판 변경 과정에서도 이런 의견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평가란 단순하게 좋다, 나쁘다의 흑백이분법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신체제도 앞선 긍정적 측면과 함께 긴급조치로 인한 기본권 제한, 당시 야당지도자인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제명과 같은 반민주적 폭압통치의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1979년 10월 16일에 일어난 부산민주항쟁은 "유신철폐, 독재타도"의 구호에서 드러나듯, 유신체제에 맞서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지켜내려는 부산시민들의 저항운동이었다. 박 대통령의 공적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평가하되, 민주화운동은 또 그것대로 자랑스러운 전통과 가치로 인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성숙하고 온당한 시민적 양식일 것이다.

많은 여행객들이 경험한 일이지만, 중국인들은 모택동을 위대한 지도자로 존경하면서도 문화대혁명은 그의 명백한 과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모 주석의 사진을 수호신처럼 택시에 모시고 다니는 운전기사도 모 주석이 60%는 잘했고, 40%는 잘못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러한 평가의 척도와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모 주석에 대한 역사적 평가 문제로 중국인들이 얼굴을 붉히며 '수구꼴통'이니 '좌빨'이니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 일은 본 적이 없다.

민주주의는 '잘살아보자'는 가치와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부분적으로 충돌하고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다. 가령 부산의 경우, 무역항으로서의 개방적 진취성과 함께 부마항쟁 같은 민주화운동의 전통이 다같이 자랑스럽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아닌가. 자갈치시장처럼 민주공원도 자랑스러운 부산의 랜드마크로 가꾸는 것이 어떨까?

내가 사는 대구에는 1960년 2월 28일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2·28 기념공원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원래 초등학교 자리였는데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아파트나 상가를 지으려던 계획을 바꾸어 도심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공원의 명칭도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2·28 기념 중앙공원'으로 정했는데 보통 2·28공원으로 부른다. 이제는 달성공원을 제치고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대구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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