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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시·군 통합과 안창마을 /강재호

'왜'도 '어떻게'도 없는 행정체계 개편추진

주민불편엔 무심한 통합논의 무의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9-27 19:36:3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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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와 시군구의 이층으로 되어 있는 현행 지방정부체계를 뜯어고치자는 이야기가 다시금 정치권에 무성하다. 지난 2005년 당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지도부와 정부 당국은 지방정부체계를 개편하기로 총론에서 합의하고는 국회에 특별위원회까지 설치하여 요란스레 논의를 거듭했으나 끝내 각론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2006년 2월 슬그머니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제18대 국회에서도 주요 정당들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이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하였다. 정부가 이를 뒷전에서 응원하는 것도 그때 그 모습이며 사실상 개점휴업 중인 이 위원회와 위원장의 이름도 3, 4년 전과 똑같다.

그런데 지금 체계를 '왜' 뜯어내자는 것일까? 자동차사회나 고도정보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농경사회의 유물이라 지금의 생활권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의 경계는 갑오경장을 뒤집은 1896년의 지방제도에서 굳어진 것이며 시군의 구역은 조선총독부에 의한 1914년의 부군분합(府郡分合)에서 다져진 것이라 이 주장에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등의 자치단체들이 수백 년 동안 면면히 정체성을 이어오고 있는 사실을 되새기면, 자치단체의 구역이 주민의 생활권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낡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지금의 지방정부체계를 걷어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방정부의 층을 하나 줄여 이중행정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추석 등을 앞두고 벌어지곤 하는 위생이나 원산지표시의 합동단속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도와 시군구가 실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국가기관까지 이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와 같은 이중·삼중의 행정에서는 으레 행정책임의 소재가 얼버무려진다. 낭비적이고 책임성 없는 이러한 행정체계는 지방정부체계를 허물어서가 아니라 현행 1200여 법률과 3100여 행정명령을 고쳐야만 그 소지를 발본색원할 수 있다.

시군구를 통합하고 시도를 없애자는 일부 정치권의 움직임은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보편적인 시대사조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써 자치단체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이론에서나 실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궤변이다. 부분적으로는 지나치게 규모가 작아 통합을 수긍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우리 시군구의 평균 인구는 OECD 30개 회원국 중에서 이미 제일 많다. 그 평균 면적도 영국 다음으로 큰 편이다. 정치권과 정부가 좋아하는 미국의 기초자치단체보다는 인구에서 무려 수십 배나 더 크다.

한편 체계개편의 '어떻게'에 대해 주요 정당은 정말 무책임하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법률안이 7개나 상정되어 있다. 2개는 지방정부체계를 개편하는 절차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5개는 개편의 실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국회법에 따라 발의한 이들 법률안 중 국회 제1당인 한나라당, 제2당인 민주당의 당론을 거친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당 대표는 얼마 전에 같은 당의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법률안에 대해 "그런 얘기는 우리 당에서는 거론된 적도 없다"고 했다. 정부 역시 지방정부체계에 관한 그랜드 디자인 없이 지방교부세 등으로 시군구의 통합만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이상은 주민들의 일상과는 다소 무관하다. 절박한 사정이 10년이고 20년이고 방치되는 가운데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이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주민들은 짜증 난다. 자치단체의 경계가 불합리하여 주민들의 일상이 불편한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보다는, 이런 사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며 지방정부체계를 만지작거리기 좋아한다. 1995년에 입주한 금사대우아파트는 금정구와 해운대구에, 1998년에 준공된 거제유림아시아드아파트는 연제구와 부산진구에 각각 걸터앉아 있다. 생활쓰레기 처리와 주민세 납부 등이 같은 단지 내에서도 달리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구와 부산진구에 걸쳐 있는 안창마을의 불편은 이들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전국 각지의 많은 주민들이 이러한 불편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주민들의 일상에 등 돌리고 있는 자치단체의 경계부터 차근히 바로잡자. 이것도 해결되지 않으면서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나타나 홀연히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에 우리 모두 더 이상 현혹되어서는 안 되겠다.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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