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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호기심과 진화 /곽차섭

호기심이란 감정은 본능과 이성의 중간

자연의 지성이 꼭 인간 뿐일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0-21 21:21:5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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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몇 교수님들과 점심 후 커피를 마시다가 인간 진화의 가장 중요한 내적 동력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 대체로 동의한 대답은 '호기심'이라는 것이었다. 호기심이란 알다시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유적 감정의 일종이다. 그것은 특히 무엇을 찾거나 탐색하거나 학습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은 본능과는 다른데, 본능은 좀 더 고정적 행동 패턴을 유발하는 데 비해 호기심은 더 예측하기 힘들고 유연한 표현 방식을 보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각별히 미지의 것과 관련이 있다. 호기심(好奇心)이란 한자로 보면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서양어의 어원인 라틴어 쿠리오시타스(curiositas)의 어간(語幹) 쿠르(cur) 역시 '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지의 세계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그것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는 것, 그것을 깊이 고구(考究)하여 숨겨진 진실을 알아낸다는 것, 바로 이런 행동이야말로 인간의 진보를 추동해 온 내적인 힘이 아니었을까?

물론 호기심은 인간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심리학 사전들에 의하면, 그것은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류, 파충류, 심지어는 곤충에서까지도 관찰되는 매우 광범위한 감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 다른 경우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과는 달리 질적 차이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호기심은 통상 대상을 모방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인간은 여기서 더 나아가 환상과 상상의 세계를 갖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호기심은 본능과 이성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감정인 것 같다. 인문학자로서 자유롭게 상상해 본다면, 감정과 이성을 연결해 주는 가교 같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성으로 진화 중인 감정 같기도 한 아리송한 존재이다.

다윈 이래 정교하게 가다듬어져 온 자연선택론은 비생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생명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조상의 유전자가 어떻게 자손으로 전해지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복잡한 현상을 관찰하면 그러한 설명만으로는 어떻게 그토록 복잡한 현상들이 출현했는지 잘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설명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아예 모든 것을 신의 창조 덕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신은 대체 어떻게 그런 정교한 메커니즘을 만드셨는지 탐구해보는 것 역시 신이 주신 인간의 호기심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호기심이란 감정은 동물에게만 있는 것일까? 인간은 자신의 행동 방식이나 척도와는 아주 다른 생물체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지한 경향이 있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다든지, 고통을 느낄 수 없다든지 하는 일반적 편견이 그렇다. 식물도 물론 움직인다. 속도가 아주 느리고 행동 반경이 좁아서 쉽게 관측할 수 없을 뿐이다. 식물이 감정이 있는가 하는 것은 누구도 답을 할 수 없는 문제이다. 확인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감정(물론 우리의 감정과는 다른 어떤 것이겠지만)이 아예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난(蘭)이 재미있는 예가 될 수 있겠다. 지구 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난이 번식하고 있는데, 각 종류마다 꽃받이 하는 방식이 다르다. 때로는 기상천외한 경우도 있다. 일부 학자들이 '매춘부 난'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가 있다(이에 대해 너무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길 바란다). 이 난은 벌을 통해 수분(受粉)을 하는데, 꽃이 암벌의 뒷모습과 아주 닮았다. 그래서 수벌(좀 멍청한 놈이 틀림없겠지만)이 교미를 하려고 꽃에 앉았다 머리에 꽃가루만 뒤집어쓰고는 다른 꽃으로 날아가 수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난은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해줄 벌의 암컷 모습을 알게 되었을까? 현대 과학이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우연히 암벌 모습과 유사한 꽃모양이 돌연변이에 의해 나타났고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여 계속 유전자를 통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럴 듯 하지만 아무래도 미흡하다. 설명이 기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호기심이 준 상상력을 발동하여 난도 감정이 있고 호기심도 있어서 주위 환경을 잘 살펴서 암벌의 모습을 갖게 되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의 지성이란 것이 꼭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쨌든 호기심 없는 생명체는 죽은 생명이다.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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