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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세종시와 신뢰의 위기 /탁석산

세종시 건립논란 충청만의 문제 아냐

신뢰는 사회적 자본…번영은 그 위에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0-27 20:10:0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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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으로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데 '트러스트'라는 책이 흥미를 끈다. 이 책은 이데올로기나 제도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이 더 중요한 때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을 국가가 보존하고 개발하느냐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적 자본으로 저자는 신뢰를 들고 있다. 근면이나 성실은 개인적 미덕에 속하지만 신뢰나 정직은 사회적 자본에 속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은 경제적으로도 입증된다는 거다. 즉 똑같은 돈을 투입해도 어떤 나라는 잘되고 어떤 나라는 잘되지 않는 원인은 그 나라의 사회적 자본의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은 성공 사례로, 필리핀은 실패의 사례로 등장한다. 경제적 효율이라는 것도 사회적 자본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세종시 문제가 시끄럽다. 나는 평지풍파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세종시는 2005년인가 여야가 합의해서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미 공사에 들어간 사안이다. 선거 때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천을 공약했었는데 왜 갑자기 수정 내지 백지화가 등장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정부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는데,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애당초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이 정권이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문제를 일으킬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내세우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세종시를 건설하면 자족기능이 없기 때문에 도시가 공동화할 것이고 또한 정부의 기능을 분할하는 것은 효율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수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국익을 위해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려를 짚어보자. 우선 자족도시가 되지 않을 것이기에 행정이 아닌 다른 것을 선물하려 한다는 것이다. 포항에 포항제철을 만들어준 것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자족기능을 담당할 선물과 함께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원안대로 추진하면 된다. 행정에 자족기능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정부는 신뢰를 지킴과 동시에 원안의 부족함을 보완한 훌륭한 정부로 남게 될 것이다. 원안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다음으로는 효율성의 문제다. 정말 행정부의 9부를 옮기면 효율이 떨어지는가? 몇 년 전에도 이 문제로 나라 전체가 꽤 오랫동안 시끄러웠는데 새삼 다시 논의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가령 남북이 통일이 되어 행정복합도시를 보다 북쪽으로 옮겨야 한다든지 아니면 남북 간의 긴장이 전쟁 일보 직전이어서 시기를 늦추지 않을 수 없다든지 하는 정도의 사유가 발생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1960년대인가. 도로의 정비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에 든 게 언제이며 인터넷 등 과학의 발달로 소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데 거리로 인한 효율성이라니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미국은 뉴욕과 워싱턴을 빨리 하나로 합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좁은 나라에서 수도권 집중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과제다. 즉 지방이 식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수도권 과밀로 인한 주택, 환경, 교통 문제 등을 지방균형발전을 통해 해결하고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살 수 있어야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보다 더 큰 손실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상실이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도 대통령이 공약한 사항도 중대한 변수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엎어질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크게 한번 속아본다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충청도민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다음에는 자신이 사는 지역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신뢰가 무너지면 엄청난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후쿠야마는 경제와 문화는 하나라고 말한다. 경제의 토대 위에 문화가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토대 위에 경제가 번성한다는 것이다. 신뢰를 잃는다면 경제적 효율성은 없을 것이다.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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