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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책임을 묻지 않는 공직사회 /이만열

불법과 탈법에도 책임전가만 하는 공직자들이 법치를 입에 담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25 20:54:1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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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BS 사장이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면서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이 지난 12일 있었다. 1심판결이었지만 그것은 승소해도 실익이 열하루밖에 없는, 그래서 '사실상의 최종심'이었다. 이 판결에서 원고 측은 승소했고, 그를 해임한 측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패배자는 피고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그의 수족 몇 사람"이 더 있었다. 현 방통위원장을 비롯하여 표적감사에 임했던 공무원, 그를 배임죄로 엮어 기소한 정치검찰, 납품외주 제작사까지 뒤진 국세청 그리고 KBS 친여성향의 이사들이었다. 이들은 똘똘 뭉쳐 한 사람을 내쫓는 데는 혈안이 되었지만, 불법으로 판시되었을 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런 때는 마땅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누는 것이 도리다.

무더기로 패배했지만 그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축출'시킨 이상, 그것이 적법한가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견마지로(犬馬之勞)야말로 불법성이 드러나더라도 출세가도가 보장된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패소는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그 불법에 연루된 누구에게도 법적 책임은 묻지 않았고, 상응하는 처벌도 없었다. 이렇게 책임을 묻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공직사회를 향해 승소한 당사자는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인사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더 이상 '법치'니, '정의'니, '선진국'이니, '나라의 품격'이니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공직사회에 책임을 묻지 않는 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최근의 미디어법 사태를 두고 헌재와 국회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몰염치한 태도나, 흐지부지 끝난 청와대 행정관의 기금압력 관련 행태는 그들을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화나게 한다. 4대 강 예산을 부실하게 제출해 놓고 그걸 빨리 통과시켜 주지 않으면 경제회생의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윽박지르는 각료들의 시위는 유신시대 작태가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한술 더 떠 국회 예산이 통과되지 않았는데도 사업부터 시작하는 안하무인에는 분노가 치민다. 예산은 그 자체로서 법인데, 법제정도 없이 수십조원 사업을 선행하는 것은 국회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국회가 '상전'처럼 떠받드는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다. 이런 난행들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고 있으니 이건 누가 책임을 물어야 하나.

'용산참사'는 책임을 묻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다. 300여 일을 넘겨 질질 끄는 동안 이 참사는 이제 세계를 향해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웅변적으로 증언하는 수치스런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국제 망신을 당하면서도 올해 다시 유엔의 북한인권문제 제기에 동참하고 있으니 이게 아귀가 맞는 행위일까. 부산 외국인 참사 앞에서는 무릎도 꿇고 몇 번씩 사과도 하는데 자국민에 대해서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없으니, 이게 국민을 섬긴다는 고위 공직자의 자세인가. 이 참사와 관련해서 아직 한 사람의 공직자도 스스로 책임진 적이 없고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검찰과 법원이 보인 행태는 볼썽사납다. 법문에 공개하라는 강제조항이 없으니 검찰 조서를 못 보여주겠다는 검찰이나, 살벌한 분위기를 무릅쓴 증언들의 행간을 읽지 못하는 판사는 법맹(法盲)이요 법문의 노예다. 이런 공직자에게는 왜 책임을 묻지 못할까. '참사'의 근원이 도시재개발사업의 모순과 비리, 거기에 얽힌 추악한 이권다툼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지실할 터, 거기엔 눈감고 생존권투쟁에 나선 시민들만 때려잡으려 하니 그런 공직자들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책임을 묻지 않는데 책임을 지는 공직사회는 없다. 공직사회 귀책을 엄격히 행사하는 것은 정의의 공공성을 높이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한다. 시민의 분노는 경찰력보다는 분노의 원인제거를 통해 효과적으로 치유된다. 공직사회에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국가체통이 서게 되고, 그만큼 국민은 통치권력을 신뢰하게 된다. 책임을 묻지 않으면 불신을 키우고 허무주의를 부추기며 통치영역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적시에 책임을 묻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은 결코 통치권에 누가 되지 않는다. 국민을 보듬는 감격을 준다.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면책되는가. 아니다. 그 파장은 가깝게는 정권교체로, 장기적으로는 역사 앞에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부끄러운 세대를 양산할 뿐이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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