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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소통의 실종, 정치의 실종 /오창호

자기확신 버리면 소통의 문 열려

지성의 한계 느낄때 비로소 대화 가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2-13 20:29:3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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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뜨거운 사회다. 사회의 여러 지판들이 부딪히면서 내는 마찰열 때문이다. 근본적으로는 서양과 동양이 한반도에서 문명적으로 부딪히고, 남과 북이 이념적으로 부딪힌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으로는 여당과 야당이 정치적으로 부딪히고, 사용자와 노동자가 경제적으로 부딪힌다. 또 각종 학연과 지연이 이해 관계적으로 부딪히고, 서울과 지방이, 영남과 호남이, 그리고 기독교와 유교가 부딪힌다. 이렇게 복잡한 지판의 구조 속에서 그 대결의 전선은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어지럽게 형성되고 이동한다. 우리의 몸을 가로지르는 저 복잡한 대결선으로 해서 대한민국 사회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우리의 삶은 뜨겁고 고통스럽다. 대결선이 예리해질수록 사람들의 심성은 모질어지고, 사회는 야박하게 된다.

지판의 대결선이 선명하게 부각될수록 소통의 문은 닫히게 된다. 대결선의 선명성은 우선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나타난다. 예컨대, '죽어도', '절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점 부끄럼 없이', '흔들림 없이', '결단코' 등등의 극단적인 표현이 이런 언어이다. 이런 표현은 사실 언어라기보다는 무기이며, 소통을 위한 언어라기보다는 선동을 위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에 대해서는 자신을 결박하는 기능을 한다. 자신의 순수성과 정당성 그리고 진리성에 대해 확신하고 이를 비타협적으로 견지하면서 타인에게 강요하는 태도를 원리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주의의 대표적 사례를 네오콘과 이슬람원리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결연한 태도가 미덕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악덕이다. 지난 9·11테러와 이라크침공의 예에서도 목격했듯이 원리주의의 종국은 테러와 전쟁이기 때문이다. 원리주의의 요체는 자기 확신이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확신이요 오만이다. 따라서 원리주의는 무지의 터전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이 배우고 익힌 유식의 터전에서 발아한다. 즉 무식자가 아니라 유식자가 원리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마도 한국사회가 이렇게 요란하고, 경쟁적이고, 대결적인 것은 국민들의 학력이 지나치게 높아서 서로 잘난 탓일지도 모른다.

요즘 시끄러운 세종시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편에서는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면 행정의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도시의 자족기능도 갖출 수 없기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종시 건설은 지나친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에 어떤 수정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결선은 원안 수정론 대 원안 고수론, 국민과의 약속 대 국가의 이익, 정치적 합의 사항 대 정치논리의 배제 사이에서 그어져 있다. 이러한 대결선을 중심으로 여러 정치세력들이 때로는 합종하고 때로는 연횡하면서 어지럽게 정치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필자는 세종시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원안고수론자들은 왜 법에 규정되어 있는 그대로, 한 줄을 더해서도 빼서도 안 되고 문자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또 역으로 세종시법 수정론자들은 기존의 세종시법을 완전히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주장도 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국민과의 약속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에 해석의 여지는 없는 것일까? 국가의 이익이라는 주장도 어느 것이 국가의 이익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세종시가 원안대로 건설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이익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일까? 세종시 건설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는 것의 당부당의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 일방의 주장만 옳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소통의 문은 확신을 버릴 때 비로소 열린다. 마찬가지로 정치의 길도 나의 생각이나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전제되었을 때 비로소 열린다. 그것은 인간 지성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며, 세상의 신비로움에 대한 각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한용운 님이 노래했듯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이 누구의 발자취인지 '알 수 없다'는 자기 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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