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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노벨상과 정의로운 전쟁 /조경근

오바마 수상 연설서 평화 위한 힘 강조

한반도 핵문제에도 똑같이 적용가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03 20:39:3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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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이 화재다. 평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정의로운 전쟁'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미국 청년 수천 명을 먼 전쟁터에 보낸 책임이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어려운 질문들을 안고 이 자리에 섰다"면서 "(마하트마 간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운동이 히틀러 군대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흔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사람 나름이다. 많은 젊은이들을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터에 내보내는 일은 적어도 정상적인 인성의 지도자라면 누구에게나 괴로운 결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목숨을 잃게 될 명령을 내리는 일이, 조국이나 숭고한 이념을 위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과연 쉬운 일이겠는가.

국제정치학에서 평화주의자와 현실주의자 간의 치열한 논쟁은 인류의 긴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일이다. 그들 논쟁의 핵심은 평화가 국가들 간의 대화로 가능할 수 있다는 주장 대 오직 힘(무력)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주장 간의 대립이다. 이 대립은 한반도의 경우에도 곧바로 적용된다. 북한이 참여하는 평화 체제의 수립이 대화로 가능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 대 결국은 힘의 사용이 있거나 힘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 실재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에 나서게 될 수 있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최근 북미 간에 전개된 상황을 놓고 보면, 북한의 대외 경제 활동을 제한하거나 북한의 무기 수출을 제재하는 힘의 사용, 혹은 그것보다 더 큰 힘도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이 없으면 평화를 위한 대화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 현실로 증명되고 있는 것 같다. 즉, 힘이 평화를 지킨다는 명제가 과연 진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힘이 없으면 평화가 지켜질 수 없다는 명제만큼은 북한 문제에서도 사실로 증명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적으로는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해 힘의 사용이 어느 수준에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주요 논쟁거리다. 극악한 연쇄 살인범은 사형시켜야 하고, 인간이라고 하기 어려운 어린이 강간범도 법정 최고형의 수준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상당수 국민의 정서다. 그러나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찮다. 설령 흉악한 연쇄살인이라고 해도 그 살인자의 목숨을 끊는 결정 또한 살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다. 다른 하나는 통계상 사형제도가 살인 사건의 발생을 의미 있게 낮추지 못하기 때문에 종신형이 법정 최고형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사형에 대한 두 견해 중 뒤에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앞의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는 것과 그 살인자의 목숨을 뺏는 것을 인격이라는 동일한 잣대로 비교해야 한다면, 사회적으로 존재 혹은 발생하는 어떤 차이도 인정될 수 없고, 그렇다면 결국 사회는 성립될 수 없게 된다. 일을 열심히 한 사람이나 노는 사람이나 동일 인격이기 때문에 같은 액수의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는 것은 이상론을 넘어선 공상론인 것이다.

국제적 쟁점에서든 국내적 쟁점에서든 이상주의의 긍정적 역할은 크다. 삭막한 현실에 온기와 희망이 있게 하고, 현실주의와의 티격태격 거리는 보완관계 속에서 역사에 변화와 진보를 이룬다. 이상의 제시와 꿈이 없었다면 왕정을 타파한 공화정이 있을 수 없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제도가 실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주의가 독주하거나 지나치게 발흥하면 사회가 균형을 잃게 되고 현실주의의 삭막함이 차라리 나은 큰 혼란과 나쁜 결과가 오기 십상이다.

오바마의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은 우리에게 이상과 함께하는 현실의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미국의 진보주의는 실상 보수주의에 가깝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입에서 나온 고뇌를 담은 현실주의적 지적은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지도자의 정치적 신념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처럼, "세상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를 막을 힘이 있어야 악에게 세상을 내주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신년에는 이런 균형감을 갖길 바란다. 세계 최고 평화상 시상식의 자리에서도 불가피한 전쟁을 설득할 수 있는 그들의 정의를 향한 용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경성대 교수·기획조정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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