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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뜨거운 지구와 체르노빌 /제정임

원자력은 안전에 더욱 신경쓰고 신재생에너지도 개발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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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0-01-04 21:09:4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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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6년 4월 26일 새벽, 옛 소련 체르노빌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 설계 결함 혹은 운전 잘못 탓으로 추정된 이 사고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퍼져, 지금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지역은 물론 벨로루시, 폴란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20만 명 이상이 백혈병 암 등 핵 오염 합병증으로 숨지고, 사고처리 요원 등 54만 명 이상이 불구가 된 것으로 추산됐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신체 기형과 장애, 백혈병 등을 지닌 아이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숲이 말라붙는 등 생태계 파괴도 심각했다. 이 참사는 1979년 미국 펜실베니아의 쓰리마일 섬에서 일어난 방사능 누출사고로 예민해져 있던 각국에 '핵 발전'의 위험을 충격적으로 각인시켰다. 그래서 미국은 이후 단 한기의 원자로도 추가 건설하지 않았고, 독일은 기존 원전까지 폐기하기로 하는 등 상당수 선진국이 원자력에서 등을 돌렸다.

그런데 '뜨거워지는 지구'에 대한 공포가 체르노빌의 기억을 밀어내고 있다. 화석연료 때문에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커졌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적은 원자력이 석유의 대안으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에너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과 인도는 앞으로 10~20년간 수십 기의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고,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도 핵 발전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난 연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부터 원전 4기를 수주한 것은 이렇게 '부흥기'를 맞고 있는 시장에서 '큰 돈'을 벌 가능성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 미국 등의 기술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지 30여 년 만에 세계 6번째의 원전 수출국이 됐다는 것은 우리나라 과학자, 기술자, 기업인 등의 탁월함을 보여준 쾌거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 '쾌거'에 마냥 환호하기가 어려운 것은, 혹시 지구적 재앙을 일으킬 '핵 지뢰'를 까는 일에 우리가 앞장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다.

환경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을 '핵무기'와 사촌 간이라고 생각한다. 원자력 발전에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기용 핵 확산이 아니더라도 체르노빌과 같은 대참사의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물론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제대로 통제되는 원전은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뉴욕의 무역센터빌딩이 민항기의 자살공격을 받은 것처럼, 원전이 전쟁이나 테러의 공격 목표가 된다면? 어떤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원전관리도 허술해져 사고가 난다면? 이런 우려에 대해 '걱정도 팔자'라고 일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9·11테러, 인도네시아 등에 닥친 쓰나미, 서브프라임 부실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 등 '상상도 못했던 재앙'이 불쑥불쑥 닥쳤던 것을 돌이켜 보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우리가 항상 하얀 백조만 봐 왔다고 해서, 검은 백조(black swan)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라는 얘기다. 한 번 사고가 터지면 100~200㎞ 반경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전을, 반경 수백 ㎞의 국토에 이미 20기나 가동하고 있는 우리다. 그런데 여기에 10~20기를 더 세운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나아가 테러 가능성 때문에 건설단계부터 '파병'이 거론되는 중동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수주 활동을 펴는 등 원전을 '수출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기후변화 전문가인 에머리 로빈스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에 의존하는 것은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머리 위에 핵폭탄을 쌓아 올리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더구나 우리는 위험한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복안도 아직 없다. 또 정부의 계획대로 원자력을 '수출 주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 재원 등을 몰아주다 보면 '진짜 친환경'인 태양열, 풍력,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위축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급한 것은 에너지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등 기술개발에 집중해 진정한 친환경 성장의 동력을 찾는 일이다. 원자력이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 시대를 잇는 징검다리가 될진 모르지만, '녹색 경제'의 주역이 될 수는 없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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