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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산중에도 소통이 있다 /정찬주

봄비 내리는 날 아내와 함께 산중 이웃을 찾아 외로움을 털어냈다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12 19:41:02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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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무렵이니 봄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다. 계곡물이 불어 바위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상쾌하다. 비가 오면 산중 농부들은 달콤한 낮잠을 자거나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운다.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이때는 어느 집을 찾아가도 폐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탈 없이 보낸 겨우살이를 확인하면서 먼지처럼 쌓였던 외로움을 털어낸다. 요즘 말로 이웃 간에 소통이 이뤄진다.

나는 아내와 함께 내 산방보다 더 깊은 오지에 있는 쌍봉다원에 갔다. 늦가을에 마지막으로 만난 뒤 겨우내 오고가지 않았으니 서너 달 만이다. 쌍봉다원은 내 산방에서 도보로 20분쯤 떨어져 있다. 문경이 고향인 고 씨가 십수 년 전에 들어와 계단식 논밭 6000여 평을 차밭으로 일궈놓고 사는 곳이다.

고 씨 부부가 왜 이 산중으로 들어와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달이 뜨면 창으로 흘러든 달빛을 타고 앉아 정진한 끝에 왕생극락한 광덕의 부부처럼 청정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삭발한 고 씨를 보면 스님 같고, 정갈한 음식으로 상을 차리는 고 씨 부인을 보면 절의 공양주보살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두 분은 세속의 삶을 초월한 도인이 아니다. 차 농사를 짓는 농부요, 희로애락을 나누는 엄연한 부부다. 어찌 보면 한길을 가는 도반 같다.

차밭 입구 길목에 산판에서 실어 온 소나무들이 쌓여 있다. 차를 덖을 때 땔감으로 사용하려고 구입한 소나무다. 고 씨는 가마솥에 찻잎을 덖으면서 고집스럽게 소나무 장작만 때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문화재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차인들 대부분이 편리한 가스 불을 이용해 찻잎을 덖는데도 고 씨만 고생스럽기 짝이 없는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차밭의 찻잎들이 지난겨울 동안 동해를 입어 누렇게 변해 있다. 길목까지 마중을 나온 고 씨는 그래도 찻잎들이 눈 속에 파묻혔던 까닭에 동해가 적었다고 한다. 눈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보온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난겨울의 폭설이 우리가 사는 산중에 해만 끼친 것은 아닌 듯하다. 알게 모르게 겨울 가뭄을 해소시켜 주었고, 겨울을 나는 찻잎과 겨울 작물들에는 이불이 되어 그것들을 포근하게 껴안아 주었기 때문이다.

고 씨와 나는 차방에 앉자마자 울타리 밖에 사는 산중 바깥식구들의 안부부터 묻는다. 내가 내 산방 앞 소나무 가지에 아침마다 늠름하게 앉았다가 날아가는 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고 씨 부인도 의젓하게 산을 한 바퀴 돌곤 하는 그 매를 보지 못했다고 대꾸한다.

"아마도 그 매는 이 산중의 산새들 사이에서 우두머리였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나는 내 산방에 가끔 들르곤 했던 엽사의 얘기를 아내와 고 씨 부부에게 들려준다. 엽사는 내 산방의 사립문을 만들어준 예비군 중대장을 지냈던 분이다.

"우리 군에 사는 새나 산짐승들도 각각 교신의 체계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 군에 수렵허가가 난 뒤로 엽사들이 총을 들고 몰려다니자, 어느새 우리 군의 새나 산짐승들이 수렵금지 지역인 이웃 군으로 모두 피난 가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쪽에는 산짐승들이 엄청 많다고 합니다."

엽사는 내가 사냥을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다리운동 하느라고 총을 들고 다닌다고 웃어넘기지만 베트남 전쟁 때 그곳에서 전투를 경험해 그러지 않나 싶다. 그런데 청둥오리 같은 철새들은 아직 우리 군이 수렵허가 지역인지 모르는 것 같다. 가끔 저수지 상류 쪽의 실개천까지 날아온다. 보름 전 새벽에는 휘파람새 소리를 올해 들어 처음으로 듣기까지 했다. 휘파람새 얘기가 나오자, 고 씨 부인이 웃으면서 "아이고, 호미 들 때가 되었네요. 하긴 개구리 울음소리를 자주 들었어요" 하고 말한다.

작년에는 개구리들이 동면에서 깨어나 첫 울음소리를 낼 때에 매화나무 꽃이 피었는데 올해는 늦다. 가지에 달린 매화 꽃망울 크기로 봐서 보름 정도는 지나야 꽃이 필 것 같고, 혹독한 겨울을 견뎠으므로 어느 해보다도 맑은 향기를 퍼트릴 것 같다. 우리들의 인생이 시린 눈물 속에서 피어난 꽃인 것처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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