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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산복도로 /강영조

정비되지 않은 야생의 숲이다

살아숨쉬는 부산 풍경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3-10 21:01:43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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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는 거대한 야생의 숲이다. 정확하게는 산복도로를 끼고 있는 주거지가 그렇다는 말이다. 이 주거지의 건물은 제멋대로 생긴 땅에다 쉽게 얻을 수 있는 흔한 건축 재료로 지어져 있다. 건축 양식이라고 해도 이렇다 할 것이 없다. 저렴한 재료를 견딜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공법은 부지의 형태와 건축 자재의 운반 용이성에 따라 주민 스스로가 결정하였다. 이 주거지의 건축 양식이 제각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집 하나 꼭 같은 것은 없지만 어딘가 비슷한 형태를 띤 건축물이 제멋대로 방향을 정하여 항구를 내려다보면서 서 있다. 집들은 마치 그 땅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 같은 야생화들처럼 들쭉날쭉 서 있다. 그래선지 산복도로의 주거지에서는 야생의 자연이 느껴진다. 야생의 자연이 그러하듯이 거칠고 정돈되어 있지는 않지만 거기에서는 역동성과 건강함이 느껴진다.

야생의 건축물은 산복도로의 발아래에 펼쳐져 있는 항구에서도 볼 수 있다. 멀리 영도의 조선소에서 흘수(吃水)를 드러낸 선박이 그것이다.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3차원 곡면으로 처리된 흘수는 강철을 두들겨 만든다. 물을 헤쳐나가기 위하여 예리한 곡선으로 처리된 곡면의 철판은 진행하려는 배에 대한 물의 마찰력을 최소화하고 있다. 순항에 저항하는 바닷물을 최소한의 동력으로 헤쳐나아가기 위하여 유체역학적으로 계산된 철판은 질주만을 위하여 조련된 경주마의 근육처럼 군더더기가 없다. 생존을 위하여 진화를 거듭한 야생의 자연에서 보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두꺼운 강철의 곡면에서도 본다.

산복도로에서는 이들 야생의 건축물이 세련된 고층 백화점이나 오피스 빌딩과 같은 도회지 풍경 사이로 보인다. 초현대식 도시를 사이에 두고 근경의 토속 건축과 원경의 기계 건축물이 하나의 시야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런 맥락도 없는 이들이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다. 자칫 무질서라고도 할 수 있는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이 부조화의 풍경이야 말로 부산을 매력 있는 장소로 기억하게 한다.

산복도로는 푸른색이다. 남색의 새벽하늘이 먼 수평선에서 새어나오는 여명에 밀려 서서히 밝아지면, 푸른 하늘과 항만의 푸른 해면을 내려다보는 산복도로의 주거지도 방범등이 꺼지면서 자기의 색깔을 드러낸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면서 항구의 바다가 은비늘처럼 반짝거릴 무렵이다. 그때 경사 지붕과 담장과 외벽들이 파스텔 톤 파란색 햇볕을 가득 안고는 반짝거린다. 이때 산복도로는 푸른 바다의 심연에서 발견한 고대의 유적처럼 보인다.

산복도로는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북항재개발로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지만, 부산역사(驛舍) 담장 너머로 허우적대던 하버 크레인은 부산을 방문하는 외지 사람들에게는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영도 해안을 차지하고 있는 조선소의 크레인도 잠시도 쉬지 않고 허공을 가르며 빙글빙글 움직이고 있다. 사선으로 뻗은 수평보는 항구의 하늘을 배회하고 있다. 어선의 투양망(投揚網) 크레인도 사선의 수직보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남항은 컨테이너 선박의 예인선이 물살을 가르며 서둘러 나아가고 있다. 확성기를 통하여 반복하고 있는 조선소 작업반장의 작업 지시 목소리는 서라운드가 되어 남항 안에서 윙윙거리고 있다. 항구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운동하는 항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산복도로다.

항구를 내려다보는 산복도로에는 계단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산비탈에 붙은 계단은 미로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다. 미로는 머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식하는 장소가 아니라 이동을 강제하는 공간이다. 미로에 들어서면 전진 명령을 하달받은 병사처럼 움직이게 된다. 또 운동을 강제하는 무언의 명령과 같은 산복도로의 계단은 경사진 땅 위에 이리저리 뻗어 있다. 그 계단은 에너지의 변환체인 기계류의 톱니바퀴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복도로는 무한 동력이다.

산복도로는 잘 가꾼 수목원과 같은 조용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여름날 남새밭처럼 백화요란(百花燎亂)한 야생의 숲이다. 그 야생의 숲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맑은 숨을 쉬도록 하는 폐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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