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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용두산에서 용을 찾다 /박창희

용두-용미산 잇는 한일 테마 역사회랑…일제 피해의식이 발목 잡아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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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 용(龍) 조각상이 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는데 얼마 전 자세히 봐야 할 일이 생겼다. 초량왜관(草梁倭館)을 깊이 연구해 온 재일교포인 부학주(夫學柱·36) 박사가 용두산 북카페에서 특강을 했는데, 용이 중요 모티브로 다뤄진 것이다. 이른바 '드래곤(龍) 프로젝트'다. 간략히 소개한다.

"용두산 주변은 17~19세기 약 200년간 저팬 타운(일본인 마을)이 있었다. 바로 초량왜관이다. 일본 역사상 나라 밖의 왜관은 이것이 유일무이하다. 왜관은 조일(朝日) 조인트(합작) 벤처였으며 교역·외교 외에 상시적 문화교류가 이뤄졌다. 오늘날 복원 개념으로 나는 용을 주목한다. 용두산(龍頭山)-용미산(龍尾山, 옛 시청 자리)을 연결하는 한일 테마 역사회랑을 만드는 것이다. 관광객들이 좋아할 거다. 용미산 자리에 롯데월드가 건설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순간, 무릎이 탁 쳐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감이 바로 왔다. 그런데 이어진 설명이 다소 심란하게 했다. 부 박사의 '드래곤 프로젝트'는 1997년 대학졸업 설계 작품이었는데 반향이 컸다고 한다. 대학 측은 그에게 우수상을 안겼고, 한 신문은 기발한 아이디어라며 대서특필했다. 요즘도 이따금 화제가 되는 모양이었다.

일본은 '드래곤 프로젝트'에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 젊은 학도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단순히 주목한 걸까. 혹시 그들 선조가 부산에 남긴 역사 향수를 떠올린 건 아닐까.

부 박사는 용두산-용미산이 갖는 미묘한 역사 층위를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마 깊이 들여다봤다면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드래곤 프로젝트'에 무슨 의도가 개입돼 있다고 보진 않는다.

용두산은 근·현대사의 영욕을 짊어진 산이다. 그 속에는 분하고 아픈 상처가 배어들어 있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송현산(松峴山) 또는 초량소산(草梁小山)이었다. 동쪽 해안가로 뻗어나간 봉우리는 우리 문헌에 동산(東山)으로 나타난다. 바로 제2롯데월드 자리다.

강제 개항과 더불어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할 무렵 송현산과 동산은 용두-용미산으로 바뀐다. 용두-용미산이란 말이 19세기 중반부터 일본 측 문헌에만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일제가 풍수설에 따라 그렇게 이름 했을 것으로 향토사학계는 본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용이 육지로 올라오는데 용의 머리가 용두산, 꼬리가 용미산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 풍수와는 반대 개념이다.

해방 후 지금껏 용두산이란 이름을 쓰면서 바꿀 생각조차 못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일제 잔재라며 쇠말뚝은 뽑으면서 지명 속 왜색은 용인하고 있다. 싫든 좋든 '역사는 역사다'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줏대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일본관(觀)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일본인 거리'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일본인 관광객은 어떻게든 끌어들이려 한다. 왜관 복원은 수긍이 가는데 '왜(倭)'자가 싫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도 일식 퓨전요리를 즐기고, 학계와 지자체는 일본 벤치마킹에 열을 올린다.

부 박사가 소개한 '드래곤 프로젝트'는 역설적으로 우리 속의 일본을 다시 보게 해 준다. '왜색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게 왜색으로 보인다. 당한 입장에선 가해자의 반성이 우선이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피해의식에 젖어있을 수는 없다. 내일을 봐야 한다.

부 박사의 제안처럼 용두산-용미산을 잇는 한일 테마 역사회랑을 낸다면 그 자체가 한일 미래의 신작로가 되지 않을까. 서로 공감하고 수긍하는 역사 콘텐츠를 앞세워 소통의 폭을 넓힌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왜관이란 역사공간이 낳은 '한일 벤처정신'은 의미 있는 콘텐츠다. 함께 도자기를 구워낸 부산요, 왜관의 아침 시장인 조시(朝市), 개시대청의 숨막히는 흥정, 교역 일선의 역관들, 금녀구역의 위험한 사랑 등이 구체적 재현 목록이 될 수 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 새로운 100년을 여는 '한일 조인트 벤처'가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상처 입은 용두산의 용이 노래하며 승천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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