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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업복이'와 최후통첩 게임 /박무성

불평등 세상 향한 피지배층 저항은 인간의 본성이자 자연스러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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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추노'에서 노비들의 세상 바꾸기는 실패로 끝났다. 아니, 미완성이었다는 게 옳겠다. 시청률 30%를 웃도는 인기 사극이었던 만큼 추노를 보는 코드 역시 다양했다. 누구는 영화를 능가하는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액션과 추노 '삼총사'의 복근에 눈길을 꽂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여자 주인공의 화장과 복장을 화제로 삼았다. 요즘 TV답지 않게 언급이 잦았던 '변혁'과 '개혁'을 향한 희망을 읽은 사람이 있는 반면 좌절을 느낀 사람도 있었다. 연출을 맡았던 곽정환 PD는 "내가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사실 업복이(공형진)"라고 했다. "힘없는 약자이고 평범한 소시민인, 그야말로 길바닥 사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란다. 결국 업복이는 사랑하는 초복이(민지아)를 뒤로 한 채 불의를 응징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영웅'이 된다. 이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 김혜원(이다해)은 출신도 다르고 가고자 하는 길도 달랐다. 하지만 같은 점이 있다. 모두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이다.

경제학 가설 중에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것이 있다. 1982년 독일 훔볼트대학 베르너 구스 교수 팀이 발표한 연구로, 인간이 불평등 앞에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이성적인지 보여준다. 실험은 이렇게 진행된다. 갑과 을 두 사람에게 100만 원이 주어진다. 갑은 을에게 돈을 배분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고, 을은 이를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선택할 수 있다. 을이 갑의 제안을 수용하면 돈을 나눠 가질 수 있지만, 거부할 경우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한다. 갑이 10만 원을 준다고 할 때 당신이 을의 입장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이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10만 원이라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배분율이 9대 1이나 8대 2가 되면 을은 갑의 제안을 거부했다.

사람들은 불공정 불평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같은 기질은 두고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이라는 말도 나왔다. '자존심의 과학'이라고도 한다. 학자들은 이런 심리적 기제가 뇌의 전두엽 '보상중추'에서 작용하는 것으로 여겼다. 확인이 안 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첨단과학이 이를 '생물학적 사실'로 입증했다. 미국 럿거스대학 엘리자베스 트라이코미 박사팀이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보상중추 반응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불평등 상황에서 뇌의 보상회로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고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연구 결과는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지난 2월 5일자)에 발표됐다.

이 연구는 의학적, 과학적 가치보다 사회학적 의미가 훨씬 크다. "빈부 격차가 사회갈등으로 비화되는 근본적인 이유를 생물학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도 있다. 요컨대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피지배 세력의 저항이 후천적으로 학습된 의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발로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불평등 간극을 좁혀나가는 길이 사회 안정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소득불평등 정도(통계청 자료)를 나타내는 지니계수(0과 1 사이에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는 2003년 0.277에서 지난해 0.293으로 악화됐다. 지난해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계층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비율)은 4.92배로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빈곤층으로 편입되는 이른바 계층 양극화 현상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추노에서 등장인물들은 치열하지만 하나같이 고단하게 산다. 이대길이 입에 달고 다녔던 대사가 있다. "지랄 같은 세상…" 가지지 못한 자들이 멸시받고, 부당한 권력이 판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을 터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수·목요일 밤 드라마를 보면서 이 말을 덩달아 되뇌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평등이 개선되기는커녕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라면 바꿔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사람의 본성에 충실해지는 과정이고 또한 순리인 까닭이다. 다름 아닌 과학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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