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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익과 시민사회 사이에서 /전진성

시민사회 이상과 국익 동시 추구 노 전 대통령 딜레마

국익 우선 현실서 관계 재정립 필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12 20:53:2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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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년이 다가온다. 앞으로 한 달여간 그 비극적 사건의 전말과 의미를 놓고 많은 격론이 예상된다. 지난해 봄 봉화마을로부터 비보가 전해지고 나서 '바보 노무현'에 대한 인간적 연민과 향수가 봇물 터지듯 나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생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문제 삼던 이른바 보수언론이 갑작스레 호의적인 방향으로 돌아섰으며, 그와의 사이에 분명한 정치적 선을 긋고자 했던 민주당은 물론 항상 적대적이었던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나서 사법연수원 동기생 시절 운운하며 향수의 열병에 가세했었다.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충격적인 비보만큼이나 너무나 한순간에 찾아왔기에 국민들을 꽤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생전에 야당과 보수언론은 이념적, 정책적 진검승부에 임하기보다는 대통령의 허물을 찾아내어 인격적 망신을 줌으로써 그가 표방하는 가치마저 도매금으로 깎아내리려는 좋지 못한 행태를 보여왔으며, 이는 그의 퇴임 이후에도 계속되어 결국 전례 없는 비극적 사태를 초래하고야 말았다. 기실, 그에 대한 지나친 폄훼와 사후의 어이없는 연민은 표면적인 이율배반에도 불구하고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듯싶다. 그에 대한 모든 판단이 노무현 개인에 대한 호불호에 기초해 있다는 것.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좋든 싫든 그가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나라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그저 인간적 매력에 홀려 그를 지도자로 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표방하던 '시대정신'에 동의를 표했던 것이다. 온갖 종류의 불의와 특권, 반칙이 사라지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 이는 그간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과정에서 충족되지 못했던 대다수 국민들의 바람이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내걸었던 국가 지도자의 자살을 일종의 멜로드라마처럼, 아니면 마치 한 근성 있는 사내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것처럼 보아서야 되겠는가.

그의 죽음이 비통한 것은 그가 불세출의 영웅이어서도, 착한 바보였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대변하던 '시대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검토되고 뿌리내리지 못한 채 좌초했다는 바로 그 점이 진정으로 비통한 것이다. 그가 대변하던 '시대정신'은 논의할 여지가 많은 것이었다. '과연 극한 경쟁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품어온 시민사회의 이상과 대통령으로서의 국익 수호라는 현실정치적 책무 사이에서 방황하고 좌초했던 노무현의 딜레마는 바로 대한민국이 앞으로 안고 가야 할 숙제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사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거부했고 설상가상으로 일부 식자층은 문제의 초점을 흐리며 훼방마저 놓았다.

대한민국은 국가와 시민사회가 적절치 못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나라이다. 보수든 진보든 대부분이 국익이라는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2002월드컵 구호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마법의 주문 앞에서는 마냥 무력해지고 만다.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공직, 정치, 언론, 교육, 경제, 학술,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성'의 상실이 만연한 나라다. 모든 일이 개인적 사리사욕이나 각종 패거리의 집단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국가적 사안도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라, 개인적 사안도 국익을 내세워야하는 나라이다. 과연 어떻게 이 같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혼탁한 결합을 해체하고 양자의 건설적 관계를 정립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의 실질적 내용이다. 국민국가 체제라는 세계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와해되지 않는 한 소속 국가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비난받을 수 없지만 이와 동시에 국가적 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때로는 그것과 대립을 겪게 되는, 시민사회의 보편적 가치들, 예컨대 공공성, 자유, 인권 등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기성 정치권이 상습적으로 내세우는 '사회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현실적 이해관계와 이념적 가치를 달리하는 세력들 간의 부단한 경쟁과 조정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일심 단결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주 적다. 아마도 이 같은 사안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짊어졌던 과제요,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할 그의 정치적 유산일 것이다. 5월 23일 전후로 이러한 것이 논의될 수 있으면 좋겠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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