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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게 거짓말을 해봐 /곽차섭

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정치꾼 거짓말이 가장 악질적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4-21 20:37:2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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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거짓말의 전성시대다. 지금 정치권은 뉴스의 진원지인지 거짓말의 진원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일간지와 방송은 때로 마치 진실게임을 중계하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기자나 앵커가 "숨긴다"느니, "의혹이 있다"느니 하는 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면 당사자들은 "오해가 있었다"느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느니 하는 말로 자신들을 변호한다. 이런 식의 공방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당혹스럽다. 양쪽의 말이 모두 배수진을 친 형상이기 때문이다. 설마 새빨간 거짓말을, 그것도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일 것이다.

얼마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의원이 내가 현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라며 그냥 두지 말라고 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안 의원은 또한 지난해 용산참사 유족들에게 신도들이 모금한 1억 원을 기탁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안 의원은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더구나 그 스님을 만난 적도 없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일면식도 없는 스님이 여당 중진 의원을 비난하고 나선 셈인데 둘 중 하나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가 봐도 알겠다. 뒤이어 나온 증거들로 안 의원이 궁지에 몰리는가 싶더니 돌발적인 천안함 사태로 '구사일생'의 행운을 얻게 되었다. 하기야 자고 일어나면 새 뉴스라 하여튼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참으면 난국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정치꾼들의 불문율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제는 시즌2가 나왔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의 폭로에 의하면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안 의원 발언 현장에 있었던 김영국 씨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뒷조사를 해서 혼내 주겠다고 전화로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김 씨 역시 한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에 대한 이 수석의 반응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이 수석 쪽은 김 씨와는 얼굴도 모르는 사이로 그날 말고도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급기야 명진 스님을 허위사실 유포에 명예훼손의 혐의로 고소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의 진행을 보면 시즌1과 시즌2는 극히 유사한 모습이다. 옛 현자들은 원래 진실이란 것이 반드시 흑백처럼 명료한 것이 아니니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사건에서는 오히려 양쪽의 주장이 너무 명명백백해서 곤혹스럽다. 조사해보면 다 알 일을 딱 잡아떼니 누군들 설마 그런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겠느냐며 반신반의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 수석이 얼마나 분개했으면 이렇게 신속히 고소장을 접수시켰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대체 거짓말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우선 떠오르는 것이 선의의 거짓말과 악의의 거짓말인데, 예컨대 내심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구의 얼굴이 예쁘다고 말하거나,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 나쁜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그런 경우들이다. 딱히 선의, 악의를 따지기 어려운 일상적인 거짓말도 있다. 왜 지각했느냐고 하면 차가 막혀서 그랬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거짓말에는 알게 모르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기적 의도가 깔려 있다. 다만 그것이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차이의 양극 사이에는 다기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악한 거짓말이란 남을 사기하여 큰 곤란에 빠뜨리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도모하고자 하는 경우들일 것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종류 중 하나가 바로 정치꾼들의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란 원래 도덕적 가치가 아닌 그것만의 자율성을 갖는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턱대고 비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식의 거짓말을 남발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정치꾼들의 이런 거짓말은 무엇보다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의 공적 책임성을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의 거짓말에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는, 혹은 감히 물을 수 없으리라는 권력의 오만이야말로 정치적 거짓말의 진원지다. 장정일은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도발적 소설을 썼다가 필화에 휘말렸지만, 정작 단죄되어야 하는 쪽은 정치권의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들이다.

부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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