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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가려야 또 다른 진실이 보인다 /이명현

별이 안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듯 과학적인 눈으로 진실을 가려내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17 21:48:1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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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정지우 감독의 2005년도 영화 '사랑니'를 봤다. 벌써 세 번째 보는 것인데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특히 극장에서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느낌이 남달랐다. 작년 말에 정지우 감독과 사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만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모임 전날에 정 감독의 영화 중 구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구해서 빠르게 넘기면서 봤다. 물론 대강의 스토리와 배우들의 단속적인 모습만이 내 머릿속에 남았을 뿐이었다. 모임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서 같은 영화들을 천천히 내 호흡과 맞춰가면서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모든 영화가 또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랑니'의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서 내 마음도 같이 움직였다. 세 번째로 '사랑니'를 보면서 초점을 맞춘 것은 이 영화의 배경 장면들이었다. 스토리 구조도 그렇지만 배경 하나하나가 의도적으로 중첩되고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배우들은 좀 가려놓고 배경 장면에 좀 더 몰두해볼 욕심이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배경 장면에 집중하면서 따라가는 재미를 느꼈지만 배우들의 감정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배우를 마음속에서 가리고 나니 그들이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한옥과 모던한 건축물이 교차하는 배경 화면 하나하나 색감의 대비 하나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속에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었다. 마음이 통했는지 정 감독도 이날 영화가 끝난 후 여유가 있다면 배우를 영화에서 걷어내고 배경 장면에 좀 더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천문현상 중에도 눈앞에 보이는 것을 잘 가려야 숨어 있는 진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낮에는 태양만 보일 뿐 별이 보이지 않는다. 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태양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개기일식 때가 되어서 태양이 달에 의해서 완전히 가려지는 순간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별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이것이 진실이다. 태양계 밖 다른 별 주위를 도는 행성들을 탐색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런 식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밤하늘에 보는 별들은 태양계 내 행성을 제외하면 모두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들이다. 이 별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냥 점으로만 보인다. 그러니 그 별들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이 우리 눈에 잘 보일 리가 없다. 그런데 어떤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이 있어서 우리가 볼 때 그 별 앞을 주기적으로 지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어떤 행성이 별 앞을 통과하는 동안에는 그 행성의 넓이만큼 그 별의 표면을 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별의 밝기 또한 가려지는 넓이에 해당하는 만큼 어두워질 것이다. 물론 밝기가 변하는 정도는 행성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의 존재를 알아내는 것이다. 밝기가 감소하는 양을 측정하면 그 행성의 크기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밝기가 감소한 상태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를 관측하면 그 행성의 공전 속도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가려지는' 현상을 통해서 밝은 별빛에 가려서 숨어 있던 행성들에 대한 숨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예가 천문현상에는 훨씬 더 많이 있다. 예를 하나 더 들면 두 개의 별이 서로의 공통 질량중심을 공전하는 식쌍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의 상호 간 식현상을 관측하면 그 별들 각각의 질량이나 크기 같은 정보를 아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때로는 눈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현명하게 '가려야만' 진실과 진리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광주민주화항쟁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5월 20일에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5월 23일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아마도 격랑의 한 주가 될 것 같다. 온갖 정보들과 요구들이 넘쳐날 것이고 우리들의 눈앞에 현란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 틀림없다. 지혜롭고 현명하게 '가리고' 보는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태도가 더욱더 절실히 요구되는 나날이다. 그러면 또 다른 진실이 보일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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