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후반 부산에서 탄생한 국술은 태권도 다음으로 세계화한 한국의 전통무술이다. 세계 44개국에서 300만 명 이상의 무술 인구를 거느리고 있다. 세계 국술인들의 정신을 담은 국술원의 맹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으며 종교나 파벌을 초월하여 신의와 우정으로 각계각층이 선량한 국제민들과 협력한다'. 새삼스럽게 국술원의 맹세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오늘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하는 6·2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뭔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이 시대 무예인들에게서 '사람의 길'을 묻기 위해 현장에서 만난 그들은 복잡하지 않고 명쾌했다. 국술원의 서인석 회장은 "정신을 먼저 닦고 신체를 단련하는 무예인은 이해 관계를 다투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히 삶과 죽음을 다투는 종교와는 무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인은 '무인의 길'뿐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차력무술인 오동석(부산사회체육센터 상임부이사장) 씨의 경우 혈기왕성한 시절의 도전정신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무예인의 무협지 같은 이야기를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들에게도 시대 흐름을 제때 따라가지 못한 뼈아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만족한다'는 무예인은 항상 정의와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한때는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무술도장이 문을 열었을 때 관장끼리 대결을 벌인 뒤 패배할 경우 깨끗이 간판을 내렸던 그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새로운 도전의 길은 열려 있다. 선거판에서는 그 같은 전통을 발견하기 힘들다.
우리는 4년을 주기로 온갖 수사를 동원해 주민의 표를 얻으려는 수많은 '정치인'들을 접하게 된다. 그때마다 한 표를 행사해야 할 유권자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들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두 번 겪은 경험이 아니다. 선거가 있는 정치시즌이면 유력 정당의 공천을 신청했다 탈락한 후보들 중 상당수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다. 심지어 당을 바꿔 후보로 나서는 경우도 매번 목격한다. 정당 공천에 문제가 있는 등 논란이 적지 않은 만큼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자가 당을 갈아타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다. 어차피 "정치란 그런 것 아니냐"는 것이 유권자들의 오랜 경험이다. 하지만 신의도 우정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선거에는 평생지기라도 상대방을 떨어뜨려야 한다면 '우정도 필요 없다'는 풍토가 고착돼 있다.
후보 시절에는 '무조건 밀어 달라'고 호소한 뒤 당선되면 잔뜩 목에 힘을 주고 4년 내내 유권자 앞에서 '건방을 떠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이들에게는 지역주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등 다짐에 다짐을 한 공약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예산권과 인사권,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건방을 떨다가' 또다시 선거가 다가오면 몸을 움츠리고 유권자들을 '하늘처럼 모시겠다'는 등 태도를 바꾼다. 순간 변신의 귀재라고나 할까.
이번에는 교육감과 교육위원들까지 표로 뽑아야 할 판이니 더욱 곤혹스럽다. 대부분의 유권자 입장에서는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들 "미래 교육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하는데 아무나 찍고 보자는 심정이다. 유권자들은 무예인의 정신처럼 최선을 다해 후보자를 뽑아 결과에 만족하고 싶지만 영 찜찜하다.
선거 때만 되면 터져 나오는 수많은 담론과 구호들이 난무하지만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당선 목적을 위한 것들이라는 것쯤은 웬만한 유권자들은 안다. 한탄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선거철만 되면 겪는 일이다 보니 유권자들은 무감각해진 게 분명하다. 당선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의 정신'이 빚은 결과다. 그래도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들은 괴롭다.
선거판에서 신의를 지키고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만족하는 새로운 전통이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무예인이 가고 있는 '사람의 길'에 빗대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선거판의 풍토를 언급한 것이 무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