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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하창식

부끄러움 알아야 사람이라는 말은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한 진리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21 20:45:4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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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휴대전화 소리가 요란하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웃에 대한 조그마한 배려도 없다. 이런 소음공해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나이 어린 학생들일수록 더욱 가관이다. 10여 분도 모자라 30분 아니, 심지어 1시간 가까이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별로 다급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도 않다. 태반이 욕설인 경우도 있다. 옆에 있는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휴대전화에 목숨 거는 사람들, 특히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에겐 지금 부끄러움이 없다.

어디 휴대전화뿐이랴. 인터넷공간도 마찬가지. 악플로 얼굴 없는 폭력을 일삼거나, 근거도 없는 괴담으로 사회를 어지럽히는 일부 누리꾼들.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 언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안타깝다.

휴식시간 동안 난장판같이 떠들썩한 교실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요즈음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교실에 들어와도 떠들썩함이 멈추질 않는다. 출석을 불러야 겨우 조용해진다. 대학생들이 이러니 초·중등학교로 갈수록 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들은 그래도 선생님들을 무서워하고 선생님이나 어른들 앞에선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부끄러운지 어떤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없어진 것 같다. 배우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배워도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내 잘못된 행동이나 말에 대해 가장 엄중한 질책의 말이었다. 부끄러움을 알면 함부로 행동하거나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일상화된 디지털 시대에 부끄러움은 한갓 장식품에 불과하게 된 듯하다. "부끄러움을 알아라"는 질책은 이제, 고리타분한 기성세대의 금과옥조로 전락해 버린 것일까?

학창 시절에 여러 스승들을 만났다. 많은 지식들 중에는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도 있고 지워진 지 오랜 것들도 있다. 모두 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학창시절을 떠난 지 30년도 더 지난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은 가르침 중의 하나는, 중 2학년 때 1일교사로부터 배운 것이다. 스승의 날이었다. 우리 반 어느 학우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칠판에다 '人人人人', 사람 인(人)자 넷을 커다랗게 쓰시고 그 뜻을 풀이하셨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풀이하시며,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사람다움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다. 14살 소년에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이정표가 된 가르침이었다. 지금껏 내 삶을 이끈, 큰 가르침 중의 하나이다.

학생들을 가르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30년 전 학생들과 15년 전 학생들, 그리고 1년 전 학생들과 오늘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피교육자로서 학생들의 변화를 절실히 체험한다. 물론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내 시대의 삶과, 급속히 디지털화된 사회에 사는 요즈음 젊은 그들의 삶이 같을 리 만무하다. 사고방식 또한 같지 않음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14살 때 배웠던 그 큰 가르침, 즉,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하는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도 유효한 진리가 아닐까?

휴대전화, 인터넷 등의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요즈음 학생들을 대하면서 우리 학생시절과 비교할 때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는 바로 '부끄러움'이 아닌가 한다. 잘못을 범하고도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아니 오히려 잘못을 위장하기 일쑤다. 말이나 행동에도 거리낌 없다.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점에서 오히려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아는 그들이 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부끄러운' 행동이나 말은 아닌지 한두 번 생각한 뒤 행동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나도 벌써 쉰세대인가 보다. 어쩌면 가르치는 직업 탓이기도 할게다.

지난 주말 연구실을 찾은 학생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주었다. 순간, 교실에 앉은 학생들에게 전공지식만 가르쳐 온 사실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였다. 모처럼 제대로 된 선생 노릇 한 번 한 셈이다.

부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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