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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민주주의, 멀고 피곤하지만 가야할 길 /정지창

가꾸지 않으면 금방 오염되고 훼손되는 존재… 투표로 지켜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01 22:27:2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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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애타게 갈망하던 시대가 있었다. 모두들 숨쉬기가 힘들어 헐떡거리면서도 숨죽여 흐느끼며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 산 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때, 사람들은 함께 모여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그리고 숱한 젊은이들이 피와 눈물과 땀을 바친 다음에야 우리는 가까스로 우리 손으로 직접 국민의 대표를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민주주의는 우리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이제 민주주의는 조심스레 받들어 모셔야 할 귀한 손님이 아니었고, 힘들여 붙들지 않아도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평범한 이웃처럼 친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공기나 물, 가족, 이웃처럼 소중하지 않은 사소한 일상사로 여겨 뒷전으로 제쳐두고, 그보다는 남보다 더 많이 벌어 더 폼나게 쓰는 일에 목을 매게 되었다. 선거도 내 손으로 나의 대표를 뽑는다는 생각보다는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이 자기네끼리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특권층을 뽑는 요식행위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투표율도 점점 낮아지게 되었다. 선거철이면 선관위에서 각종 이벤트를 열어 투표율 높이기에 안간힘을 쏟지만 그렇다고 선거가 끝나고나면 투표율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인데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냉소적 방관주의에다 기왕이면 내 고향 출신, 내 학교 동창을 뽑아야 필요할 때 무슨 청탁이라도 넣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연고주의,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일수록 때깔 좋고 화사한 거짓 약속에 잘 넘어가는 이른바 '존재와 의식의 괴리', 이 모든 것들이 민주주의를 슬금슬금 벼랑 끝으로 밀어낸다.

가장 위험한 발상은 민주주의가 의도는 좋으나 피곤하고 낭비적인 제도이므로 우리 현실에 맞게 토착화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제도와 선거는 없애자는 것이다. 쓸데없는 선거로 비용만 드는 데다 선거 과정에서 패가 갈리고 갈등의 골이 깊어져 화합과 단결이 안 되므로 직선제 대신 간선제나 임명제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구의회를 없애고 대학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는 것 등은 이러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발상의 종착점은 유신 체제나 세습독재 체제였고 그 폐해를 우리는 남북한 체제에서 모두 경험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현재로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지만 따지고보면 이 제도는 해방 이후에 수입된 박래품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 근대적 민주주의의 역사는 60여 년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30여 년은 이른바 군사독재와 이승만 독재시대였으니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30년이 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경험한 것이 한 세대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물론 우리는 한 세대만에 압축성장을 통해 이른바 선진국의 문턱까지 도약한 놀라운 경제성장을 경험한 바 있다. 수출 중심의 경제발전은 필연적으로 무역장벽의 완전철폐, 즉 세계화를 가져왔다. 그에 따라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농경문화가 도시산업문화로 급속하게 바뀌면서 우리의 의식과 생활방식에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문제는 이러한 압축성장과 세계화, 급속한 사회변동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왜곡과 불균형이 생겼다는 점이다.

가령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 농민 소상인들이 친재벌 성향의 정책을 내거는 정당을 지지하고, 낙후된 지역주민들이 지역균형발전을 외면하고 수도권중심 정책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지만 선거 때마다 되풀이된다. 이는 민주주의가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물과 공기처럼 끊임없이 보살피고 가꾸지 않으면 금방 오염되고 훼손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그것은 멀고 피곤한 길이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투표는 귀찮지만 투표를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어느새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말 것이다. 지방선거일인 오늘, 공약을 꼼꼼하게 비교 검토하여 모두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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