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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의무의 희생과 진정한 의무 사이 /박형섭

지배이데올로기나 거대 담론에 파묻혀 자신의 고유사상 상실한 채 살아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04 21:14:0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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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현실과 꿈을 반영하는 소우주다. 극작가는 무대 위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여 외부와 만난다. 이 극적 허구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해석해내는 사람이 연출가와 배우들이다. 며칠 전 열린소극장에서 이오네스코의 블랙 코미디 '의무의 희생자'를 보았다.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지하 갤러리에 들어선 것은 아닌가 순간 멈칫했다. 비둘기와 고양이가 크고 작은 석고상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어떤 비둘기들은 날개와 몸에 온통 상처를 입어 속을 드러내 놓고 있었는데, 속은 콘크리트 자갈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무대와 객석을 잇는 통로 구실을 했다. 배우들의 열정적인 연기와 몰입은 작은 공간을 뜨겁게 달궜다. 그들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이끌고 갔다. 어느새 소극장은 놀라움과 탄성, 희극과 비극이 뒤섞여 일체가 되었다.

20세기에 개진된 연극론 중에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극장은 용광로이고, 무대는 불을 지피는 화구다. 그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는 불꽃은 극장 전체로 번진다. 극장 안은 온통 화염에 휩싸인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배우도 관객도 모두 불에 타고 재가 된다. 그들은 마법에 걸린 듯, 귀신에 홀린 듯 열광하는 것이다.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는 화금석을 녹여 그 속의 불순물을 떨쳐내고 순금으로 재탄생시킨다. 막이 내리면 관객의 감정은 순화된다. 이것이 연극의 카타르시스다. 나 역시 관극하며 이 과정을 체험했다.

극장을 나서면서 한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씹어! 삼켜!" 연극이 끝날 무렵 인물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대사였다. 그들은 먹기 싫은, 먹을 수 없는 딱딱한 빵을 억지로 상대에게 먹이거나 스스로 씹으면서 연방 "나는 의무의 희생자다!"라고 외쳤다. 그들 주위에서 상처투성이의 비둘기와 고양이들이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 순간 극장 속의 우리는 관객 배우 할 것 없이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의무의 제물들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흩뿌리는 빗줄기 속에 극중 수사관의 질문이 사정없이 귓전을 때렸다. "당신은 뭘 원하는가, 가엾은 친구. 법은 필연적인 것이야. 법은 선한 자의 편이고, 선한 것은 무엇이든 기분 좋은 것이야. 실제로 법을 지키는 일은 매우 유쾌한 것이며, 선량한 시민이 되는 것,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이야!"

빵과 법, 선량한 시민은 빵을 먹고 법을 지키는 사회의 모범생이다. 빵이 썩었고 법이 타락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에게 빵과 법을 강요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도처에 의무의 희생자가 있다. 의무교육을 받으며 컸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의무를 이행했다. 가족의 가장, 조직의 구성원, 국가의 국민으로 동시대가 강제하는 의무를 짊어진 존재들이다. 자기도 모르게 지배 이데올로기나 거대담론 속에 파묻혀 자기의 고유한 사유체계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희생자들인 것. '지금-여기'에서처럼 '그때-거기'에서도 늘 의무와 그 희생자들은 있었다. 미래에도 의무의 희생자는 존재할 것이다. 다수, 집단, 전체는 언제나 선으로 통한다. 이것이 현실 논리이다. 예술의 위대함은 현실의 부조리나 그러한 실존의 상황 속에 처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상징과 암시로 표현하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숙명에 저항하고 도전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이오네스코의 '의무의 희생자'는 권위와 이데올로기적 조건 지우기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다. 처음에 소심하고 예의 바르다가 점점 냉혹하고 잔인한 태도로 변하는 연극 속 인물은 권력을 상징한다. 그것은 기성의 사회가 확립한 지식의 억지주입, 즉 빵을 강제로 삼키도록 하는 것과 같다. 딱딱한 껍질의 빵들에 포위되어, 그것들을 씹어 삼켜야하는 인간들은 동시대를 살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미래를 꿈꾼다. 새로운 삶에 대한 꿈, 자기 혁명을 위한 모험.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무수한 자아를 끌어내야 한다.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자질을 확인하고,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이 절실하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천해야 할 '진정한 의무'인 것이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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