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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소리 풍경 /강영조

좋은 걷기란 보는 것뿐 아니라 만지고 듣고 맡으며 이동하는 것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6-16 21:01:1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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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일이다. 이른 아침, 배드민턴 연습을 하러 동네 체육관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를 때였다. 시멘트 계단 구석에서 작은 새가 울고 있었다. 방금 알에서 깨어났을까. 계란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그 작은 새가 짹짹, 정말 그렇게 울고 있었다. 저렇게 작은 몸에서 정확하게 짹짹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현실감이 없어 보였던지 정교하게 만든 장난감처럼 여겨졌다. 그 새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도착한 연습생들도 그 새를 보았는지, 새가 예쁘다, 저렇게 작은 새는 처음 본다는 등 새 얘기를 하느라 좀처럼 연습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연습이 시작됐다. 체육관은 셔틀콕이 허공으로 펑펑 튀어 오르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때였다. 다시 짹짹, 짹짹, 하는 새소리가 들렸다. 여름이라 반쯤 열어놓은 유리문으로 새가 다가온 것이다. 코치 선생님은 그 새소리가 신경이 쓰였는지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좀처럼 셔틀콕에 집중할 수 없었다. 환청처럼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득 이른 아침이면 아파트 뒤쪽으로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소리가 들렸던 것이 떠올랐다. 여름이 되고 아파트 창문을 열어 놓기 시작하면서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날 아침 체육관 계단의 새 때문에 새삼 생각이 났던 것이다.

소리에 둔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이 때문일까 하고 생각을 해봤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우리의 생활공간은 쾌적함을 내세워 외부의 소리를 격리하려고 하고 있다. 소음차단 기능이 뛰어난 창호가 개발된 것도 그 때문이다. TV 광고에서도 보여주듯이 아파트 창호를 닫는 순간 큰 유리창 저 너머의 풍경이 일순에 조용해진다. 그런 창호가 달린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엘리베이터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동차를 탄다. 차문을 닫는 순간 외부의 소리는 차단된다. 방음은 좋은 차의 조건이다. 그 차를 타고 바깥으로 나와 사무실이나 마트로 이동할 때에도 에어컨 팬 소리와 음악이 귀를 막는다. 무성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소리가 없는 세상은 현실감이 없다. 방음재는 도시의 소음이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 쾌적한 생활공간을 가져다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현실감도 함께 가져가 버렸다.

청각은 생사를 목격하는 원초적 감각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도 엄마의 뱃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양수가 출렁이는 물소리다. 태아에게 들려주는 태교음악도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 다가가고 있을 때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기관은 청각이라고 한다. 전신이 마비돼 눈을 감고 식물처럼 누워 있는 사람도 소리는 듣는다고 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배우는 아무도 없어서 소리도 들리지 않는 병실에 옴짝할 수 없는 몸으로 홀로 누워 있을 때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무성의 세계는 죽음의 장소인 것이다. 임종 때 소리를 내 죽어가는 사람을 부르지 말라는 속설 역시 납득할 수 있다. 떠나가는 사람은 이 세상을 되돌아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는 오감 중에서 가장 소극적인 기관이다. 청각은 마음대로 닫을 수 없다. 눈은 눈꺼풀로 닫으면 보이지 않지만 청각은 잠이 들 때 비로소 닫힌다. 눈은 바깥으로 나와 있지만 귀는 안으로 들어가 있다. 그래서 바그너는 "눈은 인간의 외면밖에는 볼 수 없지만 귀는 인간의 내면을 듣는다"라고 했다. 풍경은 삶의 무대다. 바그너처럼 말하면, 눈은 풍경, 즉 삶의 외면을 보지만 귀는 삶의 실재를 듣는다. 풍경의 소리는 실재감의 근거다. 풍경의 소리를 듣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풍경 속을 거니는 것이다. 좋은 걷기는 보는 것만이 아니라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고, 들으면서 이동하는 것이다. 듣는 것에 집중하여 걸어보자.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앞사람의 발걸음이 들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두고 걸어보면 자갈이 깔린 길과 나무재료의 길은 전혀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여비와 조금 예민한 귀. 오늘 아침, 체육관 뒤의 산 쪽에서 이름 모를 새가 유난히 지저귀고 있다. 연습이 끝나면 산길을 느릿하게 걸어봐야겠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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