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6·25한국전쟁 60주년에 맞추기라도 한 듯 한미 양국 대통령은 2012년 4월 17일자로 한국이 환수키로 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까지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현재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갖고 있는 전작권이 한국의 합참의장에게 환수되는 시기가 3년7개월 늦춰졌다.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고 국운 융성을 선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바로 G20정상회의 개최지에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2015년 말까지 전작권 이양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께서 수락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로 말했다니 이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인가.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인지를 의심케 하는 이 '구걸성' 발언은 한국 치욕사에 한마디를 더 보태게 될 것이다. 태평양 지역의 안보가 중요하다면서 못 이긴 척 내뱉은 오바마의 "전작권 전환 연기는 매우 적절하다"는 발언에서는 '언불감청(言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리요'의 냄새가 물씬 난다.
전작권은 작전통제권(작통권)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노태우, 김영삼 정부 당시 작통권 환수를 주장하면서 일부 보수층의 반대여론을 의식해 작통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누고, 평시작통권은 1994년 12월 1일자로 넘겨받고 전시작통권은 뒷날로 미뤘던 데서 한국적 용어로 정착했다. 참여정부 들어 전작권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2007년 2월 한미 국방장관은 2012년 4월 17일자로 전작권까지 한국군에 넘기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꼴들이 있었다. 국방장관이나 장성 경력의 인사들이 전작권 환수를 반대하면서 시위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걸 보면서 자주국방에 관심이 없는 '저런 분들에게 국방을 맡겼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오죽했으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이들을 향해 점잖지 못한 어투로 일갈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전작권 환수 논의가 공론화의 장에서 활발했던 것과는 달리 전작권 환수 연기 조치는 밀실행정의 표본처럼 진행되었다. 정부는 작년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미국과 논의를 본격화했고 군사기밀 문제로 공론화하지 못했다고 변명하지만 신뢰하기 힘들다. 보수파 인사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환수 연기 문제를 시인한 적이 없었고, 청와대도 쉬쉬해 왔다. 군사기밀이라고 하지만 환수 문제가 공론화되었는데 환수 연기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전작권에는 '전쟁결정권'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 연기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민감한 사항이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국민의 공론화 과정을 배제한 채 밀실에서 환수 시기를 3년7개월이나 미뤄버리고는 귀를 닫아버렸다.
전작권은 군사주권의 상징으로서 환수 연기는 곧 군사주권 포기의 연장을 의미한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정부는 자위권 발동을 외쳐댔다. 그러나 전작권이 우리의 수중에 있지 않는 한 자위권 발동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위권을 말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가깝다. 전작권 환수를 3년7개월간 반납하면서 군사력 강화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이 정권은 자위권을 강조하면서도 참여정부가 전작권 환수를 위해 계획했던 7~8%대의 국방비 증가율을 3%대로 낮췄다. 정작 자주국방에는 힘쓰지 않고 내 나라의 운명을 남에게 의탁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썼으니 전작권 없는 허울 좋은 자주국방이 되고 말았다.
전작권 환수 연기를 앙청(仰請)하다시피 했으니 그 대가는 당연하다. 전작권과 FTA를 맞바꿨다는 지적은 이래서 설득력이 있다. 거래에는 공짜가 없는 법, 이걸 빌미로 한미 FTA 재협상은 물론 주한미군 분담금 증액을 비롯한 각종 압력도 불가피할 것이다.
전작권 환수 연기는 군사적 예속화를 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 대한 자주적 대응은 불가능해지고 북미 및 주변강대국을 조정하는 지렛대 역할도 포기하게 되었다. 더욱 화나는 것은 내 땅에서 외국군의 지배를 받고 있는 국군, 그 국군의 상처받은 자부심과 수치를 언제 치유하여 자주적인 군대로 탄생시키겠느냐는 것이다. 전작권이 환수되면 그동안 북으로부터 당했던 허구한 모욕으로부터도 이제 떳떳해질 것이라고 기대까지 했는데.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