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신의 삶이 아픔과 슬픔뿐이라 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세상이 그대에게 선물한 여덟 자의 축복을 사랑하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박성철 님의 '소중한 오늘을 위하여' 에 나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시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른바 머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사가 다반사이다. 그래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왜 내겐 제대로 되는 일이 없지"하고 투덜거리며 사는 게 우리 인생인가 보다. 반쯤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 하기 보단, "물이 반이나 남았군" 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사고할수록 일은 더 잘 풀리는 법이다. 너무나 잘 알려져 진부한 비유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앞뒤가 다른 사항에 대해 반전의 의미를 강조할 때 사용된다.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렇게 생각하거나, 나쁜 일임에 불구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두 경우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 이어질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다르게 주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육 일선에 있다 보니, 취업이나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자신의 목표에 한두 번 도전하다 실패하면, 낙심한 채 쉽게 도전을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그들 나이였을 때 나도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지혜를 조금씩 깨쳐갈수록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조건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걸 연륜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의 때가 덜 묻은 젊은 그들에게 슬픔과 좌절을 안겨 준 어떤 체험이 세상 사는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기쁨과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워 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한다. 그렇게 슬픔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여덟 자의 축복에 그 답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말한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도록 권유한다. 이렇게…. 나는 지금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언젠가는 기뻐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겪은 만큼 성숙해져 더 높은 비상을 꿈꿀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이웃 혹은 역사 속 위인으로부터 '1%의 희망만 주어져도 그것을 향해 달려' 기적 같은 성취를 일구어내는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암투병을 이겨내고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를 7연패했던 철인 랜스 암스트롱과 같은 분의 삶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박성철 님의 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덟 자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지름길이며 열쇠임을 믿는다. 세상을 바꾸는 긍정의 힘도 이 여덟 자의 축복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일이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일, 더 나아가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다고 느낄 때 세상은 아름답고 살 만한 것이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일만 함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씩은 두렵고 괴로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를 하자. 그러면 행복은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위의 시에서 노래하듯이, '편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꽃은 비록 외양은 아름다울지 모르나/거센 바람을 이겨낸 꽃처럼 짙은 향기를 뿜지' 못하기 때문이다.
7월이다. 장마에다 무더위가 번갈아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하는 계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 오는 거리를 보며 낭만을 읽고, 무더위 속에서 한여름을 우는 매미들의 합창을 감상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마 위로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는 순간엔 짜증도 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 않은가?
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