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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시론] 투어리즘을 넘어 /전진성

여행이 성숙하려면 어떻게 바깥 세계와 진정으로 만나며 공감할지 고민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7-26 21:34:5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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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가 절정에 이르러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역과 공항마다 북새통을 이루는 시기다. '외화 유출'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지만, 한국인의 해외 관광은 이제 그 규모와 범위에서 가히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는 듯하다. 해외 명승지에서 안내인의 깃발을 따라 몰려다니기보다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보다 특화된 여행을 하는 풍조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여행사마다 자사의 전문성과 품격을 입증할 수 있는 각종 '문화 기행' 내지는 '오지 탐험' 상품들을 앞다투어 내놓는 것이 그 좋은 지표이다.

해외관광이든 국내관광이든, 문화 탐방이든 자연 탐험이든, 여행이란 기본적으로 저 멀리 지평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아무 분별없는 일부 '저질' 관광이나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한 순전한 휴양을 제외하고는, 아니 심지어는 그것들마저도, 나름의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여행이 제공하는 이 색다른 경험들은 우리가 자신의 좁은 일상세계를 넘어설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이래 우리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은 놀랄 만큼 변모했다. 예컨대, 편협한 국수주의가 점차 자리를 잃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가치를 보다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보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대기로 접어들 무렵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행은 인격을 수양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적극 장려되었다. 동양에서는 주로 깊은 산 속의 절경을 찾아 떠났던 반면, 서양에서는 옛 문화유적 탐방이 보다 선호되었던 차이는 있지만, 동서양 모두에서 여행은 여행자로 하여금 좁은 자아의 문을 열고 넓은 세계를 받아들이는 일종의 교육 과정으로 간주되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은 여행지에서 멋드러진 베레모를 쓰고 다리에 착 달라붙는 귀족 풍 '퀼로트'를 입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초상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는 이 여행을 통해 젊은 시절의 방황을 마감하고 대문호로의 도약을 성취했다. 괴테의 고상한 귀족풍 여행과 현대의 '패키지 여행'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외관상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고상한 대문호의 젊음을 불사르던 여로와 평범한 현대 직장인의 휴가철 행락은 의외의 공통분모를 지닌다. 결국은 자기만족적인 과정이라는 점, 바로 그것이다. 나의 인격적 발전을 도모하든 아니면 단순한 말초적 쾌락을 좇든, 안내인의 깃발을 졸졸 따라다니든 아니면 나 혼자서 사막을 횡단하든, 여행이란 결국 내 바깥의 세상을 내 방식대로 소유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 문제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흥미롭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하던 18세기 말엽은 동서양의 오랜 균형이 깨어지면서 서구 열강이 본격적으로 전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한 때였다. 서구인들은 이때부터 동방세계로 대거 진출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탈바꿈시켜갔다. 그들은 비록 원대하게도 자신 안에 세계를 품었으나, 이는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이 아니라 자신의 일방적 요구를 타 지역에 관철시키는 과정이었다. 이후 19세기를 거치며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가 되면 서구인들의 동방 관광이 보다 대중적 차원으로 일반화된다. 그야말로 '투어리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시대부터는 세계 어디에 가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역과 숙박시설, 그리고 유형, 무형의 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특별히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여행을 떠나지 않는 한 우리는 전 세계적인 투어리즘의 촘촘한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우리 바깥의 세계, 그물 밖의 세계와 만날 수 없다. 동남아의 리조트에 간다면 현지인들이 허드렛일로 땀을 흘리고 있는 광경마저도 이국적 풍취로 즐겨야 한다.

여행을 통해 분명 우리는 우리의 좁은 일상을 넘어 세계와 만날 수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중심으로 볼 때만 그러한 것이다. 마치 제국시대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 현해탄을 건너와 현대문명에 찌들지 않은 원시적 풋풋함을 식민지 조선에서 발견하곤 했듯이 말이다. 앞으로 우리의 해외여행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과연 어떻게 우리 밖의 세계와 진정으로 만나며 공감할 수 있을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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