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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자연스럽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김재기

자연의 일부이면서 본성에 저항하고 거스르고 맞서는 게 인간이고 문명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8-18 21:17:3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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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와 국회의원, 교장과 대학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성추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런 문제를 흥밋거리로 삼는 일부 언론의 황색저널리즘이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당사자들의 잘못은 마땅히 추궁당해야 할 일이고 더 나아가 성희롱에 대한 한국 남성들의 무감각에 경종을 울린다는 면에서도 주목받을 필요가 있다.

이런 일들이 터질 때마다 그 진단과 해결책을 두고 늘 전문가들의 갖가지 의견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남성지배 사회의 오랜 폐습을 범인으로 지목하거나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에서 그 원인을 찾는 식으로 말이다. 모두 다 일리 있는 견해들이지만, 은밀하게 가해자들을 변호하려는 의견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사실 주위를 보면 공식적으로는 그들을 나무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들이 억울하다고 믿는 이들이 적잖은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사회의 저변, 특히 남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사회심리학적 멘털리티(mentality)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그들의 발언은 술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솔직담백한 표현을 하다 보니 나온 것일 뿐이라거나, 그들이 한 말이 크게 틀린 건 아니지만 단지 재수가 없어서 사회적인 뭇매를 맞게 되었을 뿐이라는 등의 동정론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동정론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논리의 핵심은 바로 "성이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윤리적으로 보면 이런 논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또 백번 양보하여 그들의 발언에 악의가 없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리와 상대를 가리지 않고 그런 말들을 무분별하게 내뱉은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게 세간의 중론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좀 다른 각도에서도 살펴보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은 다 좋으며 언제나 '인위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막연한 신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그건 좁게는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환경과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과, 넓게는 현대문명의 성과에 대한 총체적 반성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식품도 자연식품이 좋고, 각종 제품도 자연소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심지어 성형미인보다는 자연미인이 낫다는 생각들이 바로 그런 세태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자연을 숭상하고 찬양하는 건 별 문제가 없을지라도, '자연'의 개념을 확대해 "자연 =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원초적 상태"라고 규정한 뒤, 그러한 자연 또는 자연적인 것이 무조건 좋다고 보는 태도는 올바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본래 인간의 문명, 더 나아가 문화란 자연에서 출발했지만, 서서히 자연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연을 변형시키고 때로는 자연을 거스르며 발전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명이 거대한 자연의 순리를 궁극적으로 무너뜨릴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미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문명과 문화는 결코 자연과 같은 것이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문명과 문화는 본래 자연에 대한 저항아고 자연과의 대결이며, 그런 의미에서 종종 우리 안의 자연스러운 본성들조차도 적절히 억압하고 조절해야 하는 메커니즘이다. 한마디로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과 대립할 수 있는 모순적 존재, 그게 바로 인류인 것이다.

독일의 문명사가인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문명화과정'에서 서구문명의 핵심적 발달과정이 신체의 생리적 현상들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쉽게 말해 대소변을 보고 방귀 뀌고 트림하고 침 뱉는 등의 행위는 분명 본능적(자연적)인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문명은 바로 이런 자연적 행위들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미덕이지만, 자연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들이 언제나 그 자체로 정당화되거나 좋은 것은 분명 아니다. 문명을 일방적으로 찬양하며 자연을 훼손하는 것도 죄악이지만, 거꾸로 자연이나 본능을 앞세워 인류 문화의 모든 보편적 성과들을 부정하는 것 또한 몽상적이고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경성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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