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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사회적 공정성의 기준 /전진성

특권층 위주로 신분 서열화한 사회

기회의 균등 없이는 절대 못 바꾼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06 20:04:54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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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 장수의 아들"이라는 말이 총리 내정자의 첫 소감일 정도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입신양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에서 요즈음 느닷없이 사회적 공정성이 화두가 되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사회를 탓하지 말고 출세하라!'는 대한민국식 정언명령은 사회 저변에 만연되어 있는 온갖 종류의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듯했다. '아메리칸 드림'에 못지않은 '코리안 드림'의 달콤함은 냉엄한 현실의 쓴맛을 잊고 새벽녘 이불 속처럼 푸근한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대~한~민~국" 아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사회적 공정성의 문제가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긴급한 사안이 된 것은 꿈꾸기마저 허용치 않는 각박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고위층 자녀의 취업 특혜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악덕에 비하면 그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힘쓸만한 자리에 있는 부모로서 자기 자식 좀 챙겨준 것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믿기에는 이 사회는 이미 너무 신분 서열화해 있고 중세식 특권에 길들여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각 '신분'에 따라 재산과 학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체력과 용모마저 점차 서열화해 가는 실정이다. 날씬하게 쭉 빠진 증권가의 백인과 시장통의 왜소하고 두루뭉술한 히스패닉 주민이 뚜렷이 구분되는 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와 유사해지는 듯하다.

얼마나 상황이 극에 치달았던지, 평소에는 친재벌과 무제한의 '자유(?) 경쟁'을 부르짖던 이들마저 갑작스레 사회적 공정성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는데, 이들의 개입으로 사안의 핵심이 흐려지는 것이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들은 주로 불공정 경쟁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마치 그러한 불공정을 막을 수 있는 법조문 몇 개만 더하면 만사형통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 아니 은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공정 경쟁의 기저에는 기회의 불평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식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라 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많은 사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대학입시는 가장 손쉽게 거론할 수 있는 사례이다. 그러나 훨씬 더 심각하고 처절한 사례를 우리는 토착 한국인과 이주민 간의 노동시장을 둘러싼 '경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일단은 대한민국 헌법과 유엔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에 어긋나는 가히 폭력적인 이주노동자 탄압을 시급히 막아야하겠지만 차후 보다 '합리적인' 법률적 조정이 가능하더라도 이로써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주노동자는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산과 언어를 위시한 문화 적응력 그리고 인적 연결망에 비추어 볼 때 토착 한국인들에 비해 턱없이 불리한 여건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쟁'이라는 시각은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보기에는 적절치 않다. 사회에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겠지만 경쟁만이 제일의 원리라고 주장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우리 사회에 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오히려 누구나가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발전시키기위해 동등한 기회를 지닐 수 있는 권리 및 그 권리에 대한 의식이다.

자유 경쟁을 부르짖는 이들은 사회적 공정성이란 그저 경쟁을 활성화하는 수단쯤이라 여기지만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경쟁이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수단이라 보는 편이 옳을 듯싶다. 경쟁없이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그만큼 불공정한 사회는 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갖은 악덕에도 불구하고 그간 여러 가지 면에서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체로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평등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개인적 상승의 길이 막혀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길은 막혀버리고 어느덧 출세한 소 장수 아들도 종래의 기득권층과 하등 다름없이 특권을 행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가난의 시절은 꿈 많던 젊은 날의 추억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제 미래를 꿈꾸기 힘든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가난하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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