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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내가 꿈꾸는 도시, 부산 /김철권

폭력 난무하는 사회… 상처입어도 무덤덤

다이내믹 부산보다 사람다운 사람 사는 안전도시를 바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10 21:25:52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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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변해버렸고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언어적으로 욕설이 난무하고, 신체적으로 구타와 폭행이 빈번하며, 성적 희롱과 성폭력은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부산광역시 정신보건센터와 부산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를 맡고 난 후로 나는 날마다 우리 사회의 폭력성에 전율을 느낀다. 학교와 길거리에서 10대들은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위기의 청소년들은 서로를 이유 없이 때리고 성폭행한다. 아비가 딸을 성폭행하고, 어린아이부터 중년 여성들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해바라기센터를 방문한다. 가정폭력의 빈도와 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간다. 충격적인 사건이 반복되면 그것은 일상적인 사례로 전락하고 분노는 무덤덤함으로 탈색된다.

세상을 감각하는 신체기관 역시 과다한 폭력 자극에 시달려 고유 기능을 상실한다. 신체적 성적 폭력에 두 눈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이제는 어떤 자극에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는다. 디지털 소음으로 청력을 상실해 버린 청각은, 비와 바람과 벌레 울음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이질적인 소리로 받아들인다. 맛을 자극하는 수많은 향신료들과 패스트푸드는 오히려 미각을 파괴하고, 향수와 화장품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정도를 넘어 후각을 마비시켜버린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상처를 덜 받기 위해 모든 감각기능을 차단한 채 무덤덤한 얼굴로 세상을 감각한다. 삶의 의미를 지각하기보다는 조건반사적으로 세상의 폭력에 반응하며 흐느적거린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아이들을 세뇌시킨다. "낯선 사람과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면 안 돼", "누가 길을 물으면 대답하면 안 돼", "차를 태워주겠다고 하면 절대로 타서는 안 돼",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해"….

상처를 숨기기 위해 사람들은 갑옷을 입는다.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쇠사슬 같은 무거운 갑옷을 두르고 살아간다. 상처가 넓고 깊을수록 더 단단하고 두꺼운 갑옷을 두르고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 갑옷이 자신의 피부라도 된 것처럼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는 순간이다. 상처가 아픔으로 더 이상 기억되지 못하는 순간이다. 기억되지 못한다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상처받은 기억은 결코 망각되지 않는다. 생각으로 기억되지 않는 것일 뿐 몸은 항상 기억하고 있다. 인지적 기억이 정서적 기억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의식적 기억이 무의식적 기억으로 숨었을 따름이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물속에 잠겨 있는 느낌 이해하겠어요?", "너무 외로워요. 너무 공허해요. 너무 쓸쓸해요. 그러니 떠나가지 말아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내 몸 속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요. 화가 치밀어 미치겠어요. 차라리 죽어버리겠어요", "나를 안아주세요. 나는 울고 있어요. 불쌍하지도 않나요." 사람들의 상처가 말하는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갑옷을 뚫고 울부짖는 소리를 날마다 듣는다. 사람들마다 몸 속 깊숙이, 의식 저 너머 깊숙이 숨어버린 상처가 생각으로, 감정으로, 행동으로 교묘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불안증으로, 우울증으로, 강박증으로, 정신병으로, 그리고 성격장애로. 이 사회 모든 곳에 팽배해 있는 폭력성 때문에 앞으로 병원의 정신과는 더욱 더 호황을 누릴 것이다. 갑옷 입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두께와 무게가 두껍고 무거울수록 정신과 의사는 바빠질 것이다.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것도 중요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도 옳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안심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사회부터 되었으면 좋겠다. '다이내믹 부산'보다는 '안전도시 부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공손한 말을 쓰고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가 우리 부산 사람의 특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술이나 담배 대신 운동을 즐기고, 질서를 잘 지키는 그런 부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도시, 그런 부산을 꿈꿔 본다.

동아의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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