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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이다 /김재기

일상 속에서 놀이의 소재 찾아 즐기는 것이 재미있는 삶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01 21:05:3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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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도 끝나고 모든 학교가 방학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의 어수선함이 멀지 않은 요즘은 바야흐로 놀이의 계절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무조건 "놀지 말고 한 자라도 더 공부하라"는 말만 들으며 자라온 학생들은 "왜 공부는 좋고 놀이는 나쁜가?"라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이 낡은 이분법을 정면으로 거부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한 채 갈등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새로운 이분법을 만들어내는데, 그게 바로 "공부는 괴롭고 놀이는 신난다"는 논리다. 둘 모두 참이라면 "괴로운 건 좋은 것이고, 신나는 건 나쁜 것"이라는 궤변이 성립할 터! 하지만 이 두 가지 이분법은 사실상 동전의 앞뒷면과 같으며, 둘 다 거짓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분법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한 놀 때도 공부할 때도 보람과 즐거움(= 의미와 재미)을 함께 느낄 순 없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삶이 의미와 재미를 모두 요구한다면, 우린 이런 궤변을 인정할 수 없다. 아주 간단하게 한 가지만 물어보자. 우리는 놀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일하기 위해 노는가?

이 난문에 제대로 대답하려면 우선 놀이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한다. 논다는 건 뭔가? 선입견을 제거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노는 걸 좋아한다. 나쁜 걸 원래 좋아하는 걸 보니 성악설이라도 지지해야 할까? 아니면 역시 인간은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무릎을 쳐야할까? 이에 대한 교과서식 정답은 이렇다. 놀더라도 건전한 놀이를 해야 하며, 놀이에도 규율과 절제가 요구된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 대단한 말도 아니다. 어린아이들이 흙탕 속에서 뒹구는 건 건전하고, 젊은이들이 노출 심한 옷을 입고 클럽에서 온몸을 관능적으로 흔드는 건 불건전하다고 단정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어릴 때로 되돌아가 보자. 학원의 볼모가 되어버린 요즘 애들에겐 안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어릴 때는 노는 게 곧 일상이고 삶이었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세계를 탐구하고 인간관계를 배우고 감성을 기르고 신체를 단련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노동과 논리와 규율이 지배하는 세계가 일상이 된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이제 놀이는 그런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특별한 활동이 된다. 물론 아무리 노는 걸 좋아해도 일생을 놀기만 하면서 보낼 수는 없다. 그게 모든 인류의 꿈이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고, 어떤 소수의 꿈이라면 그들은 남의 노동을 착취해서 살아가려는 기생충 같은 자들일 뿐이다. 사실 노동과 규율로 채워진 우리의 일상은 별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세계지만, 어쨌든 그 속에서 우린 삶의 의미를 만들고 삶을 지탱한다. 하지만 놀이는 이런 세계로부터의 탈출, 그것도 의식적이고 자발적이며 쓸모없는 탈출이다. 일상의 모든 일이 다른 뭔가를 위한 것인 반면 놀이는 그렇지 않다. 놀이의 유일한 유용성은 그 무용성(無用性)에 있으며, 놀이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예컨대 노름은 가장 대표적인 놀이지만, 오로지 돈을 따기 위해 눈이 벌게질 때 그건 이미 놀이가 아니라 고된 노고가 된다.

네덜란드의 석학 '호이징하'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에서 놀이의 형식적 특징으로 자유(자발성), 비일상성, 욕심 없는 자세 등을 들었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이 새로운 규칙과 진지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재미를 낳는다고 했다. 또 '놀이와 인간'을 쓴 '로제 까이와'는 놀이의 본질이 사회성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놀이는 삶의 필수요소다. 왜냐? 재미있으니까! 재미없는 삶,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무료해진 삶은 소외되고 타락한 삶이다. 이제부터는 어디서 어떻게 재미를 얻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자. 지금까지는 일상의 관점에서 놀이를 바라봤지만, 이제부터는 놀이의 관점에서 일상을 바라보자. 인생 전체를 재미있는 놀이로 도배할 수는 없더라도 더 많은 놀이의 소재와 방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감각적 자극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늘 심심해하고 뭔가 짜릿하게 재밌는 것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놀이의 진정한 재미는 능동적으로 일상을 재조직할 때에만 얻을 수 있다. 가만히 누워서 재미라는 감이 입안으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분명 의무와 반복되는 일상으로 채워진 지옥이 될 것이다.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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