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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악의 이분법을 피하기 위해 /전진성

유신·5공 시대처럼 헌법·인권 무시… 민주세력 통합 통해 거악 일소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21 20:24:4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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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은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는 듯하다. 국민의 상당수가 반대하는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만에 하나 좋은 의도에 따른 것이라손 치더라도 그처럼 속전속결로 밀어붙일 수는 없는 법이며, 아무리 그럴 듯한 구실을 갖다 댄들 졸속의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대통령과 연고가 깊은 특정지역에 국민의 혈세를 몰아준 뻔뻔스러움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고, 어떠한 정치적 입장에 서든 자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국민이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도발에 희생되도록 방치하는 안보상의 무능함을 변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정치적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특별히 진보적인 입장에 서지 않더라도, 아니 진정으로 양식있는 보수라면 이러한 정권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비판적 여론의 확산에 응당 기여해야할 것이 언론 매체일 텐데, 한때는 대통령의 언행을 토씨 하나하나 따지며 조롱거리로 삼던 미디어 권력이 현재는 정권의 방패막이 노릇을 마다하지 않고 있으니 놀라울 지경이다. 사회적 의견들의 '매개체'가 아니라 차단막인 '미디어'는 더 이상 미디어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작금의 파국적 상황에 직면하여 새로운 정권 창출을 위한 민주세력의 결집, 특히 '진보대통합 정당'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 명칭과 성격이 어떠하든 간에 지금과 같은 정권과는 판연히 다른 새 정부가 등장하여 우리 사회의 기풍을 일신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소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정치적 노선이 아니라 악의 척결이다. 국민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지 않고 국민 눈높이의 도의를 지키며 기본수준의 사회적, 군사적 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정부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것은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로 회귀한 듯 선악의 투쟁이 요구되는 작금의 상황이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인권이 한낱 종잇장처럼 가벼이 여겨지던 그 시절, 절대적 악에 대한 강고한 투쟁을 위해서는 작은 차이들을 문제 삼을 겨를이 없었다. 일단은 악을 척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악뿐만 아니라 선과도 거리를 둔 회색의 중간지대는 좀처럼 용인되기 힘들었다. 회색지대의 삶이란 곧 악과 결탁하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아, 이처럼 선악으로 양분된 세상이란 본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 내면을 얼마나 치명적으로 옥죄는가! 이른바 '인간 영혼의 해부학자'로 일컬어지는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극악한 전제정 체제와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선 지식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19세기 러시아에서 시대적 소명에 대한 지식인들의 지고한 헌신이 얼마나 자기분열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한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지적한 바 있다. "개개의 인간을 증오하면 할수록 인류 전체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불길처럼 타오른다."

기실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절대적으로 악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특히 인간의 영혼은 선과 악, 사랑과 증오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선악의 한쪽 편에 서야 하는 상황은 영혼의 복잡미묘한 본성이 상실되고 외부적인 요구에 맞추어 규격화되는 실로 비인간적인 상황에 다름 아니다.

건국 이래 줄곧 선악의 거친 대립구도를 넘어서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그와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일부에서는 '잃어버린 10년'으로 폄하하는 바로 그 시기였다. 일단 절대적인 악이 척결됨으로써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안들이 각각의 섬세한 차이들에 주목하여 사안 그 자체로 논의될 수 있는 조건이 창출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교육분야에서 경쟁과 기회균등의 문제, 혹은 노동조합의 민주화 문제, 이주민의 동화와 다문화 정체성 문제 등은 기존 방식의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다루기 힘든 실로 미묘한 사안들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또다시 낡은 이분법이 요구되고 있는 것을. 다시금 절대적 악이 등장함으로써 섬세한 차이들을 논하는 것은 차후의 일로 미루어졌다. 선악의 이분법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악을 척결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민주세력의 대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더 이상은 '대통합'이 아니라 섬세한 차이들이 존중되고 인간의 영혼이 자유를 얻는 사회가 이룩될 수 있도록 말이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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