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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숨결이 향기로운 삶 /박형섭

청사포 숲길 쓰레기 청소하던 전직 교장선생님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을 주신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2-31 19:40:2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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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날이다. 새로운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솟아오른다. 언제나 솟아오르는 태양 앞에 서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떠났던 시인 랭보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보았다. 무엇을? 영원을. 그것은 태양에 녹아드는 바다." 그의 시어는 대자연의 역동성을 노래한다. 여기에서 영원은 단순히 물리적 시간이나 공간을 함의하지 않는다. 영원은 무한의 다른 이름이요, 우주이다. 그 우주에 인간이 존재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생겼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시간은 시, 분, 초 등의 단위로 나뉘어 소유되고 매듭을 잇는 시작과 끝을 지니게 되었다. 거기에서 세월의 흐름을 인식하라는 뜻도 들어 있을 것이다. 오늘로 해가 바뀌었으니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며 미래를 설계한다. 나 역시 지난날 세상의 중심이 되리라는 이상을 품었다. 그러나 이젠 내게 높은 꿈과 이상보다 소박한 현실적 다짐이 더욱 힘 있게 다가온다. '나의 존재가 이웃의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우연히 새벽 산책 길에서 만난 한 노인을 통해서 얻은 생활의 지혜이다.

나는 여명의 청사포 숲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 길가 희미한 어둠 속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구청 소속 청소부려니 생각했다. 알고 보니 그는 배낭 속에 집게를 넣고 다니며 보이는 대로 오물을 줍는 등산객이었다. 그는 환경운동가도 봉사단체에서 일한 경력도 없었다. 초등학교장으로 퇴임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여느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등산복에 운동화를 신은 '자발적 청소부'라는 점이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교단만큼 화단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들은 그와 함께 꽃과 나무의 이름을 외우며 인간의 몸이 자연과 하나임을 배웠을 것이다. 학교에서 지식보다 삶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의 모습이 그날 이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잔잔한 감동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책을 읽고 정리한 지식을 글로 옮기는 작업도 중요한 일과다. 강의의 만족도나 글쓰기 작업량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되기도 한다. 문득 내가 타인 앞에 설 능력이나 모범이 되는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실제로 나는 학생들 스스로 사유하고 숙고하며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또한 그들과 함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미래는 그들의 열정과 도전에 달려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배움과 가르침은 동시에 일어나며 삶의 현장은 그 자체로 훌륭한 배움터이다. 나는 과연 '자발적 청소부' 노인의 자리에 놓일 수 있을까.

봉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자기애의 발로이다. 이웃은 내 삶의 일부이며 나 역시 그들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을 얘기하고, 멀리 있는 것 같이 느끼지만, 정작 그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가정, 직장 혹은 거리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나 태도가 타인에게 감동 혹은 불쾌감을 유발시킨다. 세상의 이치는 유기적 관계 속에 있다. 이 현상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언행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누군가 내게 양보했을 때, 혹은 내가 자발적으로 양보했을 때,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을 보았을 때 기분이 좋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이 보인다. 개인의 존재방식은 학문이나 지식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그의 가치와 품격을 결정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인생을 사용하는 주체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해 본다. 참을 수 없는 일들이 돌발하는 일상 속에서 권태를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즉 실존하는 것이다. 실존이란 타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기획하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즉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 본래적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영혼은 빛을 발한다. 진정한 휴머니즘은 나와 이웃의 관계에서 탄생한다. 새해 첫날 아침, 나의 숨결이 향기롭고 나의 심장박동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는 소박한 현실을 소망해본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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