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의 여진이 지속되면서 2010년 말 현재 9.4%의 실업률과 GDP의 8%에 달하는 1조23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하였다. 누적된 정부부채가 14조 달러로 법정 차입한도에 육박하여 신용등급이 하락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기관이었던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자동차 제조업체로서 미국의 상징이었던 제너럴 모터사와 크라이슬러사가 한동안 경쟁력을 상실하였다. 7870억 달러나 되는 경기부양을 하였음에도 경제위기에서 탈출하지 못하여 다시금 연방은행이 자금을 투입하였으나 이제는 인플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폴 크루그만 교수가 지적하는 미국 경제의 허약성, 스티글리츠 교수가 강조하는 부의 심각한 편재, 제프리 삭스 교수의 기후 변화현상에 대처하지 못하는 미국의 경직적인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유럽식의 제도를 수용하여 미국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바꾸는 것, 즉 정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변형된 시장경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는 경기진작법안과 의료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에너지 법안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증대시켜 왔다.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2005년 독일이었다. 독일은 사회시장 경제, 즉 정부의 개입을 상당부분 수용하고 사회복지를 강화한 경제제도를 2차 대전 이후 발전시켜 왔다. 사회시장 경제라는 단어 중에서 경쟁과 효율성에 초점을 둔 '시장'보다는 복지와 분배에 방점을 찍은 '사회'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에 더하여 1990년 독일이 통일된 이후 1640만 명의 동독 주민이 서독에 편입되면서 사회복지 프로그램 혜택도 주어졌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실직하더라도 노동을 통해서 얻었던 소득과 비슷한 혜택을 받는 반면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해고하기가 어려워 정규 노동자 고용에 소극적이었다. 이 결과 2005년에 경제 성장이 거의 멈추고 산업인구의 12%에 달하는 500만 명의 실업이 발생하여 사회적 불만이 가득하였다.
실업과 경제침체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어 슈뢰더 총리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개혁정책을 실시하였으나 그 후유증으로 재선에 실패하는 등 격심한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당시 독일정부가 영미식의 자유시장 경제를 대폭 도입할 것으로 예상하였지만 독일 경제전문가들은 독일의 근간인 사회시장 경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이의 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진단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가운데 시장경제의 장점을 보다 수용하는 부분적인 개혁을 통하여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대세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다.
현재 미국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오바마 대통령이 공정한 경제와 기회의 균등을 표방하였다고 하여 미국이 자유시장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정부개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유럽식의 사회시장 체제를 채택하리라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미국인들은 강한 미국을 이루어온 사회적 기반이 자유시장 체제와 개인의 자유 및 자유기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자유시장경제가 운용상의 잘못, 특히 금융기관의 방만한 경영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에 이를 고치게 되면 경제적 활력을 회복하게 되리라는 시각이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정부의 개입 확대정책을 추진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 이후 지난 3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작은 정부 정책으로부터 벗어나는 커다란 변화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2010년 11월 중간선거 이후 오바마 정부가 감세정책을 유지하고 친기업 정책을 일부 수용하고 있는 점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변화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중요시하는 미국식 자유경제 틀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미국과 독일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앞으로 우리 경제가 눈여겨보아야 할 타산지석의 사례라는 생각이다.
휴스턴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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