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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상하이 스캔들'과 남성적 상상계 /주유신

남성 생각 속 여성, 처녀·악녀 이분화

이번 사건서 극명, 미해결돼 더 흥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23 20:29:1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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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신밍'이라는 한 중국 여성을 둘러싼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제목 같은 '상하이 스캔들'로 알려진 이 사건은 선정적인 불륜 관계 폭로에서 시작해 비자 발급을 둘러싼 비리와 국가기밀 유출 등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확장되더니 결국 정부부처 간 세싸움에 음모론까지 가세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정부는 합동조사단까지 구성해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조사에 나섰고 드디어 '해외공관 영사들의 복무기강 해이 문제'라는 다소 싱거운 결론으로 끝이 난 듯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적 차원에서는 측근과 공신들을 주요 공관에 꽂아넣는 'MB식 보은외교'가 빚어낸 총체적 외교 난국의 결정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고, 정체를 비롯해 현재 행방까지 오리무중인 '덩신밍'에게는 '중국의 마타하리'라는 별명까지 붙으면서 그녀의 모든 행각이 첩보를 비롯한 스파이 활동의 일환이라는 의구심 역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이 스캔들은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서 언론이 주도하는 공적 담론 내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덩신밍'이라는 여성을 둘러싼 한국 엘리트 관료들의 뒤엉킨 욕망 구조와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이 거의 동형구조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여성을 둘러싼 남성적인 상상계의 원형과 이에서 비롯되는 파노라마적 환상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경연장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원래 한 사회의 대중문화 속에 존재하는 서사, 신화, 도상학 등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억압 및 강박증 등과 증후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재현의 권력을 주로 남성이 지니고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을 둘러싼 기호계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제약에 종속되며, 이런 과정을 거쳐 특수한 기표들이 탄생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랫동안 남성적 상상계를 지배해온 '처녀(Virgin)와 악녀(Femme fatale)'의 이분법이다.

'처녀'가 성적으로 순결하고 남성과 사랑에 헌신적인 구원의 여성상이라면 '악녀'는 지성, 미모, 독립성과 같은 또 다른 권력들을 통해 남성을 지배하고 결국은 파멸시키는 위협의 상징이다. 하지만 두 가지 유형 모두 실제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양극화시킨 것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결국은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이중적 욕망과 모순적 환상을 투사시킨 존재라는 점에서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그런데 '덩신밍'이라는 여성을 둘러싼 재현과 담론은 철저하게 '악녀'라는 표상을 중심으로 해서 구조화되고 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너무나 적극적이고도 전략적으로 무기화한 인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하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화신으로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섹스가 자본화되고 자본이 성애화되는 현기증 나는 회로 속에서 그녀는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파괴적 매혹'의 담지자로서 위치 지워진다. 더구나 그녀가 내세웠던 많은 지위와 정체성들이 대부분 거짓으로 판명되고 있다든지, 상냥하고 고분고분하다가도 욕망의 충족이 위협받는 순간에는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두 얼굴의 소유자였다는 사실 등은 여성을 내부와 외부, 즉 아름다운 표면과 그 안에 내포된 위험한 비밀로 양극화시키는 남성적 상상계의 지형학을 온전히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한중 간의 외교적 문제 때문인지 한국의 권력층 내부의 문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덩신밍'에 대한 수사 자체가 원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됨으로써 그녀를 둘러싼 의문은 한 치도 해결되지 못한 채 그 '판도라의 상자'가 영원히 봉인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베일 쓰기는 비밀스러움을 함축한다. 여성의 육체와 관련된 여성적 속성들은 공적인 것으로 충분히 다루어질 수 없고, 비밀이 드러나면 무언가 위험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한 서구 페미니스트의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 것은 나 혼자만의 심정이 아닐 듯하다.

영산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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