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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시대여! /정지창

일반인 영웅만들기 만병 통치약 아냐

상식 통하는 사회엔 영웅이 필요없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4-03 21:01:1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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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1주년을 맞아 46명의 전사자들과 한준호 준위를 '영웅'으로 칭송하고 추모하는 추모식과 위령탑 제막식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천안함 실종 장병들을 구출하다가 익사하거나 실종된 어선 금양호의 선원 9명은 의사자로 인정받지 못해 '잊혀진 영웅'이 되고 말았다.

그런가하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가 우리 해군의 구출작전으로 생환한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과 손재호 기관사는 '아덴만의 영웅'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나머지 선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한편,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자인 도쿄전력의 시미즈 마사다까 사장은 하루아침에 '사상최고의 스타 사장'에서 '무책임하고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사장'으로 전락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53시간 동안 잠적하는가 하면, 과로를 이유로 사고대책본부를 떠나면서, 사고 초기에 원전을 버리기 아까워 바닷물로 냉각시키지 않았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원전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복구작업에 매달리고 있는 도쿄전력과 협력사 직원 450명은 '원전 영웅들'로 불리며 언론과 시민들의 동정을 사고 있다. 이들 원전 결사대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목욕도 못하면서 하루에 두 끼의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들 가운데 3명은 작업 중 방사능에 오염된 물웅덩이에 발이 빠져 심각한 피폭을 당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가미카제 특공대처럼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 이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이제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은 할리우드 영화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최근 브라질 북서부 아마조나스 주의 마나우스 시에서 열린 제2회 세계지속가능 성장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을 가진 대국으로서 환경보호를 위해 대형 수력발전소 대신 태양열을 이용하는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을 촉구했다. 그는 아울러 국제사회에 지속가능 성장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대규모 댐 공사로 내쫓기는 브라질 원주민을 '영웅'으로 내세운 새로운 삼차원 입체(3D)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영웅을 내세워 현실의 난제를 시원하게 해결하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낯익은 기법이다. 가령 '람보'나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등의 영웅 이야기는 현실적인 문제를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여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할리우드 B급 영화의 전형이 아닌가. 할리우드 상업주의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환경문제도 '영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여기서 생각나는 것은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드라마 '갈릴레이의 생애'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갈릴레이가 로마 교황청의 종교재판소에 불려가 고문 위협을 받고 겁에 질려 지동설을 철회하자 그의 제자 안드레아가 탄식한다. "영웅이 없는 불행한 시대여!" 그러자 갈릴레이는 이렇게 응수한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시대여!"

따지고 보면, 과학자가 지동설 같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종교재판소의 고문과 화형까지 각오해야 하는 시대가 잘못된 것이지, 영웅적 희생정신과 용기가 없어 고문 위협에 굴복한 갈릴레이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해서 간첩으로 몰린 시민을 어떻게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꽃다운 청년들을 가미카제 특공대로 훈련시켜 사지로 내몰면서 군신(軍神)이나 호국영웅으로 미화하는 나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하급 직원들을 방사능 오염 현장에 투입하고 이들을 원전 영웅으로 만드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상식과 합리성이 존중되는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영웅이 필요하지 않다. 영웅이 필요 없고 영웅을 만들어내지 않는 시대, 적당히 게으르고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소심한 서민들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 이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꿈은 아닐 것이다. 스타 플레이어 없이도 우승을 차지한 한국통신(KT) 농구 팀도 있지 않은가.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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