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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그들만의 FTA /박희봉

수출 늘어나도 고인 돈 돌지 않아…빈부차 대책 없이 나라 온전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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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용감하다. 경제대국 일본조차 벌벌 떠는 미국,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거침 없이 추진하고 있다. 대담하거나, 무지하거나 둘 중 하나다. FTA가 무엇인가. 거대 다국적 기업과 무제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다. 1등 기업이 돈 세기에 바쁜 사이 소소한 기업은 목숨을 위협받는다. 그런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을 한국은 마다하지 않는다. 협상도, 국회 인준도 초고속으로 진행하는 질주 본능이 어지럽다. 한·EU FTA를 통과시키고 한미 FTA도 인준을 앞두고 있지만 대책도, 준비도 겉핥기식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들 FTA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이다. 수출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이 과실을 독점하는 사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등 마이너 그룹은 숨쉬기도 힘들다. 멕시코, 칠레 등의 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미국과 FTA를 맺은 뒤 수출과 외국인 투자는 급증했다. 그런 화려함의 이면에 중하류층의 한숨과 눈물이 스며 있다. 금융, 보험, 유통, 의료 등 서비스업 시장은 다국적군의 놀이터가 돼 버리니 어려움이 가중됐다. 토종은행은 거대은행에 흡수합병되고 외국계 병원과 보험이 시장을 잠식해 토종병원이 줄도산하고 국민보험이 붕괴돼 버렸다.

이명박 정부 들어 추진된 공기업 민영화나 영리병원 문제는 모두 이들 FTA를 대비하기 위한 터닦기 작업에 불과하다. 사회적 공공재를 유지 관리하는 공기업은 영리가 아니라 공익성과 사회 안정성 확보가 주목적이다. 이런 공기업을 민영화해 시장을 개방하면 다국적 기업의 먹잇감이 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수도, 전기, 교통 등 국민생활의 기초분야가 다국적 기업에 장악된 미래를 생각해 보라. 굳이 남미 지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옥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영리병원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FTA로 물꼬가 트여 외국계 거대병원들이 들어오면 부자들이 서비스의 질이 높은 그곳으로 쏠린다. 의료보험 의무화의 빗장이 열려 돈 가진 자들이 빠져나가면 의보료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는 계층이 사라짐으로써 중하류층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국 하류층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농축수산업의 희생도 대책 없는 짓이다. 절반값도 안 되는 EU산 돼지고기나 국산보다 훨씬 싼 유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면 축산업, 낙농업이 어떻게 버티겠는가. 외제 자동차나 명품, 와인 값이 떨어져 소비자가 혜택을 볼 것이란 정부의 말에는 분통이 터진다. 그런 혜택을 받는 사람은 일부분일 뿐이다. 유럽산 꽃과 어패류는 국내 농업의 피해 규모를 더욱 키울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산 농축수산물까지 엎치면 소위 '생명산업'은 고사 위기로 몰린다.

우리는 첨단산업 국가라는 걸 자랑한다. 하나, 그것만으로 나라가 지탱되는 게 아니다. 국가나 사회, 대다수의 국민이 안전하려면 바탕산업이 중요하다. 1차산업이라 하여 별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농축수산업은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다. 게다가 국민 생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외국산이 국내시장을 장악하면 그들의 농간으로 가격이 뜀박질하기 마련이다. 요즘 자주 반복되는 국제 농산물 가격앙등의 이면에는 다국적 기업들의 음모가 숨어 있다.

선진국 그룹 치고 농축수산업이 약한 나라는 없다. 우리만 이를 아무것도 아닌 양 취급한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부품·소재산업이나 금형, 용접 등 뿌리산업도 마찬가지다. 신발, 섬유 등을 사양산업이라지만 틀린 말이다. FTA는 이런 모든 기본 산업을 훼손한다. 다리가 튼튼해야 건강하듯이 기초가 부실한 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변화는 기회'라고 한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진 자에 국한된다. FTA도 매한가지. 가뜩이나 빈부격차가 심각한 상황이다. 직장인 상하위 10%의 임금격차가 7배, 자영업자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45배에 달한다. 전체적으로도 상위 20%가 소득의 71%를 차지한다. FTA가 발효되면 병은 급격히 진행된다. 수출이 늘어도 그 이익은 일부계층이 독식해 돌지 않는다. 그러니 '20 대 80의 사회'를 넘어 '10 대 90의 사회'로 이행되는 건 시간문제다. 낭떠러지로 질주하는 폭주 기관차를 멈출 사람이 어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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