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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분노하지 않는 사회 /전진성

정의·공정 점점 퇴색, 삶의 가치관 흔들어…정치권 각성하게 국민 분노 보여줘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6-13 19:52:39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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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놓으라는 예수의 말씀은 기독교적 사랑의 정신을 함축한 가르침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타인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라는 가르침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현실사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을 내며 당신의 뺨을 때렸다고 치자. 이때 당신이 너무 여유로운 반응을 보이며 다른 쪽 뺨을 내민다면 상대방은 더욱 분노가 치밀어 '그래, 원한다면 한 대 더 맞아보라'며 주먹을 휘두르기 십상일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을 폭력범으로 몰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당신은 상대방의 뺨을 받아치며 응수하는 편이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상대방은 적어도 일방적인 가해자가 되기를 멈추고, 이제 더 큰 폭력을 동원해 당신을 아예 굴복시킬 것인지 아니면 일정한 타협점을 찾을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능하면 화내지 않고 지내기를 원한다. 요즘 서점가를 강타한 책 제목처럼, '화내지 않는 연습'을 하여 각자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익힘으로써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렇다. 적어도 개인의 일상에서는 이왕이면 웃고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늘 일상의 범위를 넘는 것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폭증과 전·월세 대란, 또는 물가고 등 우리에게는 가히 불가항력적인 흐름들에 우리의 초라한 일상은 한없이 짓눌려있다. 재벌의 영업수익이 사상 최대의 수치에 도달했다거나 우리나라 아이돌 그룹들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마당까지 점령했다는 신나는 뉴스거리도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지는 못한다. 아니, 오히려 성나게 만든다. 그러한 뉴스가 마치 풍요 속에 궁색한 우리를 비웃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휴일 해운대 해변에 놀러가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비웃음을 당한 느낌을 받는다. 한없이 솟아오른 고층건물들은 우리에게 '선진조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은커녕 시민의 조망권 및 통행권 침해에 대한 분노를 자아낸다. 우리가 자꾸 성내게 되는 것은 '화내지 않는 연습'이 부족해서일까?

물론 성인군자라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화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인군자들이 가득한 사회는 실제로는 매우 잔혹한 사회일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있다'는 서양 격언이 암시하듯이, 불의 앞에서도 화내지 않고 웃음이 가득한 사회는 필연적으로 재앙을 부르게 마련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불의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는 성인군자들은 불의에 눈감고 자신의 내면적 평화를 유지하는데 급급할 것이므로. 우리는 600만 유대인의 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은 나치스의 악마적 속성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상점이 박살나고 그들이 거리에서 행패를 당하는데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던 '평범한' 독일인들의 매정함이었다는 사실을 배웠다. 또한 우리나라의 극악한 군사독재 정권을 유지시켜주었던 것도 독재자들과 그들의 몇몇 하수인들이 아니라 인권을 유린당하던 무고한 희생자들을 '빨갱이니까'하며 도외시하던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럼 현재의 우리는 어떠한가? '어차피 세상이란 그런거야'하며 손쉬운 자포자기에 빠져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분노해야한다. 4대강이 파헤쳐져 내 삶의 터전이 망가지고, 최소한의 정의와 공정성을 상실한 교육, 경제, 사회, 문화 영역의 난맥상으로 우리 삶의 모든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더 이상 미소 지으며 다른 쪽 뺨을 내줄 것이 아니라 과감히 우리의 분노를 표출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의를 행하는 세력은 '너는 이래도 참는구나. 그래, 어디 견딜 수 있을 데까지 견뎌보아라. 어쩌면 너는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는 식의 턱없는 오판을 할지도 모른다.

이제 24년 만에 6월 항쟁이 부활하였다. 그때와 하등 다를 바 없이 국민들의 분노를 선거정국으로 흡수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정치권이 국민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도록, 이제 우리 국민들은 깊은 땅 속에서 솟구치는 마그마와 같은 분노를 보여주어야 한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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