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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식 전쟁과 등록금 논란의 현주소 /박성조

한국 랭킹중독증에 왜곡된 인간 양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6-19 21:05:3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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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금 전쟁이 아닌 지식전쟁에 맞서 고급인재 길러야

한국은 랭킹을 좋아한다. 한국인들은 세상 보기를 수직적인 선상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정의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학진학률은 82%로 세계최고다. 대량생산의 극치다. 대학을 가야 '사람 노릇을 한다'는 강압은 한국사회의 절대적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완벽하게 표준화되고 어디서나 똑같은 내용의 인력양성은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산업사회가 지난 지 오래이며 지식사회가 도래했는데도 한국 대학은 여전히 산업사회의 틀에 머물고 있다. 정부가 지원까지 하며 강조하지만 '특성화'에는 아랑곳 않는 것이 한국대학의 실정이다.

오늘날 한국의 대학은 대학구조가 갖는 '조직보수주의'와 사립대학의 '족벌주의' 때문에 지식사회로 가는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푸코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식의 뒤에는 항상 '힘'이 도사리고 있다고. 독일어의 '랭킹중독증' (Rankingsucht)이라는 표현은 실적평가의 과민증에 병든 사회의 정신착란증을 말하며 이러한 병에 걸린 사회는 왜곡된 인간을 산출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내가 재직 중인 베를린자유대를 위시한 서구대학들은 랭킹에 관심이 없다. 독일에서는 5년마다 9개의 우수대학을 선정하여 특성화하는데 대폭적 지원을 하고있다. 베를린자유대는 인문학발전을 위해 지원받는 유일한 대학이다. 서구대학들은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면서 600년을 넘는 오랜 기간 유럽 대학교육의 전통을 고수하며 건재해왔다. 그래서 매년 미국에서 매기는 대학 랭킹순위에서 3, 4류로 전락했다해도 유럽대학과 사회는 맹목적으로 미국식 랭킹주의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지금 등록금으로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지식전쟁에 들어갔다. 지식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급인력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양성 및 확보하느냐다. 대학 건물의 신축과 졸업생의 대량생산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달라져 두뇌획득을 위한 적나라한 경쟁을 위크햄(Wickham)은 '글로벌 탤런트 전쟁'(global talent war)이라고 불렀다. 글로벌 탤런트는 단순히 고등교육을 받은 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졸업장은 없어도 현실적으로 연구·개발, 디자인 등에 종사한 경험을 가진 자 뿐만아니라 특정한 직업에서 유효한 기능, 숙련을 소유한 자 등을 포함한다. 한국의 장인, 독일의 마이스터는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는 선진국에서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주고있다. 보스턴 컨설팅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2050년까지 미국, 영국, 독일, 중국, 일본, 한국을 위시한 국가들은 고급인력을 자국의 힘으로 절대 충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경쟁적으로 외국의 고급인력을 도입할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이민법은 고급인력 이주자의 정의를 대폭 확장하고 있으며 숙련기술자, 명장 등에 '제3의 특혜자'로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는 이미 외국의 고급인력 의존도가 각각 52%, 64%에 이르고 있다. 독일은 2000년대 슈뢰더 수상에 의한 전격적인 그린카드 도입으로 부족한 IT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시작해 지금 4만 명 이상의 외국 IT 전문가들(한국인, 북한인들도 포함)이 독일의 중소기업에서 종사하고 있다. EU도 블루카드제를 도입해 외국의 인재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최근 독일에서의 외국 고급인력의 부족은 고령화사회의 가속화, 저출산율의 지속, 국내경기의 활성화로 인해 가일층 심각해졌다. 현재 독일은 15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채우지 못해 국민경제에 미치는 경제손실을 매년 5억 유로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의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저임금, 저숙련 노동자 수입에만 급급하고 있다. 시급한 고급인력의 장기수급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대학졸업과 동시에 실업자가 되고, 무용지물의 대학졸업장은 지식경제의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적지 않은 고급인력이 외국으로 유실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글로벌 탤런트 지수를 보면 아시아에서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는 약진을 하고 있으나 한국은 10위 안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량생산'으로 재미를 본 한국의 산업사회는 바로 이것이 재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식경제는 대량생산을 싫어한다.

베를린자유대 종신정교수·동아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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