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요란하다. 지난 1일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독도문제를 운운하며 울릉도 방문을 시도했고, 역시 대처방안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들끓었다. 울릉도는커녕 공항에서 곧바로 쫓아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울릉도 뿐 아니라 독도까지 안내해 일본 국회의원이 한국정부의 허락을 받고 방문했던 사례를 남기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자의 의사표현이 요란스럽고 집단적이었던데 반해, 후자의 주장이 조용하고 개별적이었던 때문인지, 우리 정부는 전자의 의견처럼 공항에서 축출하는 방법을 택했었다. 목청 높여 비분강개하고 단정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쪽이 쉽게 득세하는 우리 사회다운 결정이었다.
일본이 독도나 교과서 문제 등으로 시비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왜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독도문제 뿐 아니라 일본의 트집 잡기에는 일정한 배경이 있었다. 일본 내의 모순과 불안이 팽배할 때마다 그 분출구로서 한국에 대한 도발이 공식처럼 등장했었다.
고대 율령국가 성립기에 지방호족의 통합 수단으로 삼한정벌론이 창출된 이래, 근세에 전국시대의 종식을 위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정벌론이 있었고, 근대 메이지유신정부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정한론이 제기되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절망하는 민중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퍼뜨린 독극물 투여설은 재일 조선인의 무차별 학살로 이어졌고, 1992년경 일본경제가 버블붕괴를 맞이하면서 우익의 일본사 교과서와 과거사에 대한 극우적 망언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이번 울릉도 방문에 대한 일본 언론의 호의적 보도나 입국금지에 대한 에다노 관방장관의 이의제기 등을 볼 때, 몇몇 우익의 해프닝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반한정서의 팽배가 배후에 있다. 아무래도 지난 3월 괴멸적 타격을 입었던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이 크다. 지진피해 뿐 아니라, 해일로 인한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은 일본의 기술과 안전의 신화를 여지없이 무너뜨렸고, 광역적 피폭의 공포는 여전히 일본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구호성금을 모아 주었다지만 하루 종일 한국드라마를 봐야 하고, 아내들의 '욘사마' 사랑에 이어 K-POP에 열광하는 아들딸들에 대한 불만 모두가 한국으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습관적인 시비와 도발이라고 방관할 수만은 없다. 명(明) 치러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정명가도론은 임진왜란으로 이어졌고, 개항요구는 일제강점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당면문제 극복에 국민 모두가 나서는 분위기는 국력의 낭비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익에 맞지 않거나 우리의 질서를 해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출입국관리국과 입국심사창구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장관이 소란을 떨고 대통령까지 나서는 것은 문제가 있다. 독도초병 서라고 장관시킨 게 아니고, 출입관리국 직원 하라고 대통령 뽑은 게 아니다. 장관과 대통령은 출입국관리국 직원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나라 만들기에 힘써야 하고, 자신이 맡은 직분에 걸맞은 일에 주력함으로써 국력 키우는 데 기여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번영이 지속되는 한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더욱 강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일 간의 교류도 모든 계층과 연령에서 활발하게 지속되어야한다. 기왕 맺은 자유여행협약을 제한하기 보다는 방문목적을 분명히 기록하게 하고 관리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일본의 장점으로 쉽게 동의하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태도를 취하면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정을 다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 경제가 일본을 넘어서는 날 이런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그때까지 담대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광복 60주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도 광복절을 대한민국 최대의 경축일로 거행하는 것은 우리의 일본 콤플렉스를 말해 주는 것이고, 그걸 아는 일본이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자꾸 건드리는 것이다. 일본의 습관적 시비와 도발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줄 것 없고, 언론이 부산 떨 일은 더욱 아니다. 내 것을 남이 제 것이라 한다 해서 부정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술수에 말려드는 일이다. 차분하지만 조직적으로, 그리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할 일이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