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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범죄와의 전쟁'과 그들만의 리그 /주유신

'가족'을 위해 폭력 쓰는 조폭과 '식구' 위해 권력 쓰는 정치·법조계 똑같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3-07 19:49:35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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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감독 윤종빈)이 42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일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범죄 세계와 주류 헤게모니의 세계 사이를 오가며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발휘해 특권 계층의 자리에 오르는 남자. 그런 남자의 인생 역정을 다룬 영화가 놀라운 흥행성적을 올리는 동시에 시사적 이슈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징후적이다. 영화는 허구이지만 그에 대한 관중의 몰입 여부는 극이 지닌 현실감에 기반하고 있기 마련이며, 실재가 아니더라도 그 안에 당대의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리얼리티가 결여되어 있다면 이런 정도의 반향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극장을 찾는 일반 관객들은 언론 지상을 통해 회자되고 폭로되는 정치권과 사법부의 갖가지 비리(내지 의혹)들을 이 영화 속의 극적 상황에 대입시켜 볼 것이다. 영화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임에도 불구하고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부정부패, 뇌물, 청탁 그리고 특혜 사면 같은 일들이 여전히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범죄와의 전쟁'의 설정이나 여러 디테일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1972)를 상기시킨다. 이 두 영화를 묶는 공통된 코드가 있으니 바로 마피아와 조폭이라는, 사회의 정상성과는 동떨어져 있는 폐쇄적 집단을 다룬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들 집단의 행동원리인 '가족주의'의 심층을 해부한다는 점이다. 두 영화 속의 등장인물들이 범죄에 손을 대게 되는 가장 큰 동인은 가족이다. '범 죄와의 전쟁'에서 최익현의 말마따나 '가족보다 더 중요한 명분은 없'으며, '대부' 연작에서 마이클 꼴레오네가 자신의 손에 묻힌 엄청난 피들은 '패밀리'의 화목과 안녕, 번영을 위한다는 명분을 통해 정당화될 수 있었다.

가족은 사회적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동시에 가장 은밀하고 폐쇄적인 조직형태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의 관습이나 규범은 엄연히 사적 영역에 속하며 국민 국가 전체의 보편타당한 잣대가 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주의가 사적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까지 전이되는 데에서 일어난다. 공적 영역의 운영논리는 공익과 사회 정의에 바탕하기 마련인데 여기에 가족의 논리가 적용되는 순간, 그 조직 내부의 관계자들이 서로의 이권을 옹호하고 지켜주기 위한 수단으로 공권력의 역할이 변질되고 만다. 최익현이 같은 문중의 어르신을 통해 최주동 검사와 친분을 맺고 그의 비호 아래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공적 영역의 사인화(私人化)를 잘 보여준다. 이런 경우 국가 조직은 정당성을 잃고 존재 의의를 의심받게 되며 이는 민주주의 정신의 존립 근간을 흔들게 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할 공적 영역들, 예컨대 정치권과 법조계가 '자기 식구들' 챙기는 폐쇄된 조직이 되어 절대 소통될 수 없는 기준 그리고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면서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공적 영역이 내부 관계자만을 위한 파티장이 되어버리고, 사회 구성원의 권익을 보장해야 할 공권력이 다수를 소외시키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벌어진다. 더욱이 여기에 가족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면 이에 대한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의 가능성은 여지없이 봉쇄되고 만다.

그러기에 세관 공무원이었다가 공권력과의 결탁을 통해 합법화된 조폭이 된 사내가 그 아들을 법조인으로 키워낸다는 '범죄와의 전쟁'의 결말에는 결코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의 잔영을 상기시키는 씁쓸한 여운과 동시에 어떤 비아냥거림이 감돈다. '가족' 만을 챙기기 위해 가족의 이익에 반하는 타자에 대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마피아나 조폭이 '자기 식구'의 정치적, 금전적 이해를 위해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한과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계, 법조계와 다를 것이 과연 무엇인가? 공적 영역에 대한 어떠한 신뢰나 기대도 가질 수 없게 된 이 시대의 거울 이미지.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냉소와 체념의 묵시록적 애티튜드(attitude). 영화는 세상을 반영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의의가 있는 것은 한 시대의 풍경과 그 안의 공기를 담아 사후(事後)에 역사를 증언함으로써, 더 예리한 복수를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필름은 칼보다 강하다.

영산대 영상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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