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의 목초지가 있다. 마을 사람 누구나 소를 풀어 키운다. 곧 풀밭은 황폐해진다. 소를 한 마리 더 키울 때 얻는 개인적 이익은 확실하지만 비용은 거의 없으므로 초지의 수용 범위 이상 너도나도 소를 늘려서이다. 유명한 '공유자원의 비극'이다.
그 속편을 생각해 보자. 마을 이장이 비료회사 영업사원을 데려왔다. 사원은 회사 비료는 풀의 성장을 촉진, 소를 두 배 이상 기르게 한다며 그때 발생할 수익을 여러 도표로 설명해 보였다. 문제는 마을에 비룟값을 낼 돈이 없다는 것. 그런데 비료는 무료이고 나중에 가축이 늘어나면 가축당 얼마씩만 내면 된다 한다. 그것도 딱 20년만. 20년 후에는 아예 공짜로 영구적으로 비료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서조항. 혹시 손실이 발생하면 20년 동안 손해 부분만 보전해달라는 것. 마을 사람들은 기쁘게 계약을 했다. 그런데 계약 후 어찌 된 일인지 가축 수가 예상만큼 늘지 않는다. 회사는 계약대로 그 손실액을 메워 달라 해 마을 사람들의 허리가 휘는데 이번에는 가축당 비룟값을 더 올리겠다고 위협까지 한다.
4·11총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나기가 무섭게 4월 15일 주식회사 서울지하철9호선은 지하철 기본요금 50% 인상을 선언했다. 철도요금 같은 공공요금은 당연히 공공기관이 결정한다고 여기던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여 년 동안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을 부각하는 분위기에서, 공공시설의 민영화가 소리소문없이 진행됐다. 터널, 도로, 교량 등의 건설에도 민간자본이 대거 유입됐다.
이런 민자사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이다. 부산의 수정산터널(100%), 백양터널(100%), 광주 제2순환도로 1구간(100%), 마창대교(100%), 대구4차순환도로(85%), 부산신항만 2-3단계(30%), 메트로9호선 1단계(24.5%) 등 그들이 참여한 건설사업은 전국에 걸쳐있다. 위의 가로안의 숫자는 이 회사의 투자지분을 나타낸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표를 의식해 공공사업을 벌이려고 한다. 그러나 돈이 없다. 이때 맥쿼리 같은 회사가 돈을 투자하고 20년 정도 수익사업 한 후 그 시설을 아예 지방정부에 무상으로 기부하겠다니 그보다 더 좋은 제안이 없다. 맥쿼리는 한 가지 안전장치를 요구한다. 혹시 예상수입보다 실제 수입이 낮으면 지방정부가 그 차액의 80~90% 수준을 보장해달라는 것. 그리고 맥쿼리(모회사)는 지하철9호선처럼 자신을 대신해서 투자하고 관리할 자회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자회사에 이자율이 무려 15~20%인 후순위대출을 한다. 후순위대출은 회사가 망할 때 '가장 나중에' 돌려받는 돈이라 떼일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책임 있는 자세로 보이지만 지방정부가 보증하는 '망하기 힘든 회사'에서 '고액이자를 받기 위한 편법'임을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다.
지하철이 이런 고율의 이자를 내고 어떻게 이익을 내겠는가. 9호선은 2009년 개통 이후 1634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 시기 이자비용이 무려 1000억 원에 달했다. 최소운영수입보장규정에 따라 개통 이후 서울시는 47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불했다. 부산시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수정터널과 백양터널로 552억 원, 경남은 마창대교로 해마다 90여억 원을 맥쿼리에 지불했다. '아들'을 쥐어짜면 '어미'가 배부른 구조인데 아들은 지방주민들이 먹여 살린다.
세금은? 자회사는 적자기업이니 세금을 낼 턱이 없다. 모회사 맥쿼리도 이익의 90%를 배당한다. 자본시장법상 90% 이상 배당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맥쿼리의 주요 주주는 현대로템(25%), 맥쿼리인프라(24.5%), 신한은행(15%) 등이다. 우리의 세금이 재벌과 금융기관의 이익계좌로 넘겨지고 있고 그 이익만큼 주민은 복지를 포기해야 한다. 문제는 15~20년간 이 일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칼을 뽑아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공동의 목초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한국해양대 교수 국제무역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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