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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그녀들의 시간이 궁금하다 /박남준

시골 아낙네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그 자리에 슬쩍 끼어 마을문화 느끼고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9-21 19:43:5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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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새싹이 올라왔다. 파릇파릇 무씨를 뿌린 지 4일 만이다. 동치미와 무김치, 무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씨를 뿌리고 떡잎새싹이 올라와서 한 잎, 두 잎, 무 잎이 돋아나는 것을 기다리며 이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신기하고 즐겁기 그지없다.

생명이 태어나고 잘 자라도록 보살피는 일, 비록 무씨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생명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성스러운 벌레들 때문에 몇 년 전부터 헌 모기장을 씌워 무, 배추며 고추 몇 포기를 가꾸는데 덕분에 벌레들과의 다툼이 거의 줄어들어서 제법 효과를 보고 있다.

벌써 무씨새싹들이 좀 솎아줘야 할 만큼 자랐다. 새싹 비빔밥이나 새싹무침을 해먹어야지. 아침에 일어나 모기장 안에 자라고 있는 새싹들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혼자 먹기는 양도 많고 이렇게 싱그러운 음식은 함께 나눠야 하는데 누굴 부른다지.

백로가 지나서인지 오늘 아침에도 이슬이 많이 내렸다. 화장실로 가는 길가 한 뼘은 족히 수북하게 자란 풀들을 낫으로 베어 퇴비더미에 쌓는데 바지 아래 단이 흠씬 다 젖는다. 이슬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해가 반짝인다지. 그럼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르겠네. 빨래도 좀 해야겠군.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대봉감 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거렸다. 내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올봄 감나무를 작대기로 탁탁 치면서 "작년에는 너무 조금 열렸다. 올해는 좀 더 많이 열려라" 그랬었는데 작은 주먹만 한 감들이 열린 감나무 줄기가 거의 밑둥치까지 두 갈래로 쭉 찢어져서 안타깝게 했다. 그냥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혼자서는 힘들어 건너 마을 친구를 불렀다. 먼저 튼튼한 끈으로 찢어진 감나무 가지를 잘 맞춰 동여맸다. 찢어진 감나무 가지의 수분이 날아가지 않도록 황토를 반죽하여 빙 둘러 붙이고 압박붕대를 대신하여 광목으로 감쌌다. 떨어진 고무장갑을 밴드처럼 둘둘 길게 잘라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감았다. 보름이 지난 감나무 잎들 아직 살아있다. 많이 떨어졌으나 감 몇 개 매달고 있다.

그동안 7~8년은 키워온 살구나무며 매실나무, 복숭아나무가 뽑혀져 쓸려나간 자리, 올여름 새로 쌓은 마당 옆 축대 쪽이 너무 휑하니 허전했다. 그 자리에 구절초를 열을 세워 심었는데 무릎어림만큼 자라서 꽃봉오리들을 밀어올리고 있다.

집 뒤안 몇 년 동안 정말 친절한 동네 할아버지의 배려로 인해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예초기로 꽃대를 거듭 잘리고 잘렸던 구절초들이었다. 풀을 제때에 뽑아주지 않아서 다른 풀들과 함께 자라고 있는 구절초 밭을 아랫동네 할아버지께서 깨끗하게 좀 살라고 함께 베어버린 까닭이다.

그 구절초 옮겨심기에는 좋지 않은 한여름 땡볕이라서 심으면서도 염려를 했는데 잘 자라주어서 고맙고도 흐뭇하다. 구절초 꽃으로 환하게 불이 밝혀질 마당 옆 개울가 풍경을 그려본다.

요즘 동네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집집마다 모여서 토란 대를 다듬느라 분주하다. 남자들이 밭에서 베어낸 토란 줄기 묶음 단들을 지게나 경운기에서 내려놓으면 여자들은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토란 대 껍질을 벗기고 이를 잘게 찢어 말리는 일을 한다.

그 자리, 토란 대를 다듬는 자리에 동네에서 일어나는 낮과 밤의 일들이 호호 하하 웃음소리에 실려 나올 것이다. 세상의 일들이,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두런두런 거릴 것이다. 시를 쓴다나 뭐라나. 동네 끝집, 혼자 사는 늙은 총각인지 홀아비인지 모르는, 아마 내 이야기도 나왔겠지.

궁금하기도 하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에는 들어있지 않는 건강한 시간들이 거기 있을 것이다. 아주 가끔은 나도 그 자리에 슬쩍 끼어들어 그녀들의 시간을 기웃거리고 싶다. 느껴보고 싶다. 일과 놀이가 함께 있는 건강한 마을문화가 담겨있는 그 자리 꼭 한 번은 우겨서라도 끼어들어봐야겠다.

고추잠자리가 빨랫줄에 앉아 고요하고 광주리에 담긴 고추가 붉게도 말라가는 가을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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