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선수는 스타 감독이 되지 못한다'. 스포츠계에서 떠도는 징크스 가운데 하나다. 100% 들어맞기는 어렵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한다. 현역 시절 내로라하던 스타 선수들이 감독이 되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을 수없이 봐 온 까닭이다.
이유는 천차만별이나 대체로 서너 가지로 압축된다.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전체 판도를 읽지 못하고, 늘 화려한 조명을 받아 왔기에 비주전 선수들의 설움을 알지 못하며, 나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는 자만감으로 인해 다른 이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등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사례는 비단 스포츠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상사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던 직장인이 막상 관리직에 오르자 전혀 딴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는 사실 이런 징크스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야구나 축구계에서 스타 선수가 스타 감독이 되든 못 되든, 유능한 직장인이 좋은 CEO가 되든 못 되든 그게 관심 분야 밖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 감독이, 혹은 CEO가 사회 전체와 관련이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무능력한 감독이나 CEO는 판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가 있다.
5년 전 이맘 때 우리 사회에서는 '불세출의 경제통'이 사람들 입에서 수없이 오르내렸다. 탁월한 능력과 추진력으로 30대에 굴지의 건설사 사장직에 올라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던 그의 등장에 한국의 미래는 온통 장밋빛으로 치장됐다. 하지만 5년이 흐른 지금 많은 사람들은 '스타 선수는 스타 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을 처절하게 곱씹고 있다. '경제에는 도가 튼 사람이어서, 경제 하나만은 확실하게 살려줄 것'이라던 기대가 무참하게 무너져 버려서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5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70일 앞으로 다가온 17대 대통령 선거의 화두도 어김없이 '경제'다. 유력한 대선 주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경제회생을 외친다.
여당 후보는 자신이 추구하는 경제의 핵심은 성장과 일자리, 일자리와 복지가 선순환 하는 가운데 국민들이 꿈을 이루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1야당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소수 강자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경제적 약자도 더불어 잘사는 경제 체제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소속 후보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자원을 새롭게 융합함으로써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 그 과실을 공정하게 나누어 갖는 혁신경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말만 들어도 배가 불러오는 듯하다. 현란한 미사여구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장삼이사들이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만 그들이 내뱉는 말의 성찬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고갱이는 '경제를 살려 다 함께 잘살자'로 압축되는 듯하다. 당연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으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세상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지게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실물경제를 두루 경험했다는 대기업 CEO 출신 대통령도 경제문제에 발목이 잡혀 속절없이 5년을 보낸 터에 이 분야 문외한들이 얼마만큼 선전을 할 수 있을까 해서다.
반면 뒤집어 보면 다행스럽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스타 출신이 아니기에 자만감을 갖지도 않을 것이며, 경제를 완전히 꿰뚫고 있지 못하기에 남의 조언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어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올 성도 싶다. 오랜 세월 음지에 머물던 무명 선수가 스타 감독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결국 선택은 유권자의 몫. 그 밑에 숨은 것은 '이번에는 속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일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요즘 유행한 텔레비전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 이 한마디를 대선 후보들에게 던지고 싶어 할게다. '응답하라. 누가 경제를 잘 살릴 수 있는지'라고.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