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10년 전은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경험했고 이제 이명박 시대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떠올려 보고 비교해 보자.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던지. 다가오는 대선은 지난 대통령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인기, 감, 고정관념 따위에 많이 좌우되는 것이 대중정치의 속성이자 폐해다.
차기 대통령감에 대해서 우리는 참으로 진지하고 냉정해져야 한다. 우리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5년 만의 기회가 아닌가. 그런데 여론조사 상 부동층 비율이 유례없이 낮다고 한다. 10% 남짓한 부동층 비율이라면 벌써 유권자 대부분이 마음을 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직 후보자들의 정책내용이 충분히 표명되거나 토론되지도 않았는데 어찌 된 일일까. 우리는 세 후보자에 대해 충분히 저울질해 보았을까.
지난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필자는 대통령 자격을 판별하는 세 가지 기준을 세워 보았다. 첫째, 사익추구일까 공적 헌신일까. 일국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사익추구 혐의라는 건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불행히도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겪어 보았다.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후보자가 얼마나 공적 헌신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지 인물비교를 해보아야 한다. 둘째, 새 대통령에 의해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경향이 강화될지 자유롭고 자율적인 시민사회가 육성될지 판별해 보아야 한다. 창의 콘텐츠가 산업을 지배하는 오늘날에 국가주의적 통제강화는 독약과 같다. 노령층이 은퇴자 마인드를 지니고 젊은 세대가 뜻을 펼치도록 배려하는 세상이 아니다. 냉전기, 고도성장기에 형성된 낡은 정서와 신념을 내걸고 여전히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싶어 한다. 저 시대착오적인 구호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셋째, 역사의식이다. 비유를 들어보자. 일제의 식민통치는 우리에게 축복이었다고 외치는 유명대학의 학자가 있다. 혹시 그런 분이 인기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면 과연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겠는가. 과거사에 대한 판단과 인식은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척도다. 일제를 거쳐 군사정권기에 형성된 기득권 구조를 어떻게 혁파할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어떻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할지 진정성 있게 고민하는 후보자를 찾아내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사익추구의 혐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국가와 결혼했다'고 지지자들이 칭송하는 그 이데올로기에 있다. 부친에 대한 애착에서 출발하는 과거사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박 후보의 의식세계에서 시민적 자유와 자율 즉 민주주의에 대한 소명감이 충실한지 물어보아야 한다. 그는 주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반공 대결주의, 전체주의적 애국주의, 경제적 성장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노무현 그림자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노 전 대통령은 청산해야 할 과거와 가야 할 미래의 주요 의제를 총체적으로 꺼내놓고 전면적인 대결이 일어나도록 한 인물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문제 제기자에 그쳤을 뿐 해결자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구시대의 막내'는 그런 의미다. 문 후보에게 새 시대의 맏형이 될 역량과 지혜가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새로운 국가 하나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지난한, 하지만 가야만 할 방향인 시대교체를 수행할 역량과 뚝심이 그에게 있을 것인가.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 솔직한 의견을 말하자니 매우 부담스럽다.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성공한 유명인으로서의 행적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의 생각'이라는 책에 담긴 원론적 정견을 모르겠다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존재로서의 안철수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에 많은 관심을 받았고 지지율도 높지만 그에 대해 어떤 정치적 판단과 평가를 내려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남은 기간에 안 후보가 주력해야 할 일은 이런 의문에 답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대통령 선택의 기준 속에 주목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후보 캠프의 인물들과 주요 지지층을 살펴보는 일이다. 지지세력을 들여다보면 그 후보자가 과거형의 인물인지 미래를 개척할 인물인지가 보인다. 숙고의 시간은 충분하다.
시인·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