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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선거에는 영혼이 없다? /조준현

눈앞의 표 두려워 소신 밝히지 못하는 답답한 대선 후보들 어떻게 믿고 뽑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2-04 19:15:5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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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에 조그마한 촌집을 하나 샀다. 귀농이니 귀촌이니 그런 거창한 계획이 있어서 한 일은 아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면 아무래도 동남권 신공항은 밀양으로 갈 것 같고, 그러면 밀양의 땅값이 오를 터이니 미리 땅 좀 사 놓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서이다. 바로 그것이 투기꾼의 심보 아니냐고 따지면 할 말은 없다마는, 정말 소박한 마음에서 한 일이니 믿어 달라. 그런데 막상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제법 심각한 고민이 생긴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이참에 두 눈 질끈 감고 박근혜 후보를 찍어 말어? 웃자고 하는 이야기니 오해는 하지 말자.

후보를 사퇴했으니 이미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마는 안철수 전 후보가 지역 상공인들의 초청으로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김해공항의 가덕도 이전에 대한 의견을 묻자 안 후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객관적으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답변의 의미를 재차 묻자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답변 내용을 잘 살펴보시라." 그 뜻을 가덕도 이전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상공인들은 박수로 환영했다. 그러나 만약 안철수 후보의 뜻이 가덕도 신공항을 지지하는 것이었다면, 그이는 왜 분명하게 지지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일까? 물론 그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 유권자들의 표를 계산해서 할 말을 못 하는 것은, 안철수 자신이 비판하는 구태 정치가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일이지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나선 이에게 어울리는 일은 아니어서 씁쓸했다.

안철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 유력 후보 가운데도 동남권 신공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원칙과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이가 있다. 물론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원칙에 맞고 경쟁력을 갖춘 신공항 후보지는 어디인가 말이다. 후보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참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다. 가덕도를 지지하자니 대구 유권자들의 표가, 밀양을 지지하자니 부산 유권자들의 표가 걱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를 유권자들과 지역 언론이 후보들에게 더 다그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꼭 가덕도를 지지해 달라는 뜻은 아니다. 밀양이 더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분명히 말해 달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이 눈앞의 표를 의식해서 이런 문제 하나에도 자기 소신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을 믿고 나라의 지도자로 뽑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늘 국민의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여론의 반대에도 추진해야 할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 올바른 지도자라면 국민과 마주앉아 왜 이런 선택이 불가피한가를 진심으로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온 정책과 전혀 반대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에서 자기연민과 분노가 느껴진다. 언젠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 나와 스스로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장관이나 되는 사람이 영혼이 없다는 말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자기변명으로 삼는 모습을 보노라면, 왜 이 정권의 경제정책이 이 모양인지를 알 만하다. 하기야 영혼이 없는 것이 어찌 기재부 장관뿐이겠는가. 이 정권의 다른 장관들에게는 과연 영혼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러난 검찰총장에게는 또 영혼이 있는지 역시 궁금하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에게 영혼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신념이고 소신이다. 공무원들이라고 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모르겠는가. 정치가 그럴 여건을 못 만들어 주니 제대로 일하고 싶어도 못할 뿐이다. 지도자가 올바른 신념과 진정성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면 공무원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신나게 일할 것이다. 신공항 때문에 표를 얼마나 얻고 얼마나 잃을는지는 정치 전문가가 아니니 모르겠다. 그러나 표를 얻고 영혼을 잃는다면 과연 그 대차대조표는 어떠할까. 당장 표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동남권 신공항이 어디로 가야 옳은지 유권자들 앞에서 진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고 싶다.

경제평론가·참사회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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