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2년이 흘렀지만 원자로 내부에선 여전히 '지옥의 불길'이 넘실거린다. 파괴된 원자로 3기의 노심은 인간의 접근을 차단 한 채 첨단문명을 무력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방사성물질을 흘려보낸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사고가 수습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이 인류 뇌리에서 그날의 악몽은 멀어져 갔다. 재앙의 현장인 일본엔 새로 정권을 잡은 자민당 정부가 원전 유지로 정책 전환을 꾀하고, 인접한 우리 역시 먼 남의 일로 잊어가고 있다.

오늘 인류가 안고 있는 에너지의 문제는 비단 원전 폭발사고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에너지 전반에 걸쳐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구상 에너지 자원은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창고가 급속도로 비어간다. 이 엄중한 현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인류의 삶은 얼마나 자기기만적인가. 지금이라도 인류가 에너지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지 못하고, 에너지 사용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후쿠시마 원전 폭발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재앙에 맞닥뜨리게 될 게 틀림없다.

인류는 산업화 이후 화석에너지에 의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석유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현대문명이 인류에게 엄청난 풍요와 편리를 선사한 것이다. 축력이나 풍력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고 무역을 했던 과거의 인류와 전혀 다른 삶을 누려왔다. '기적의 에너지'에 힘입어 인류는 우주에 로켓을 쏘아올리고 북반구의 대도시에서 남반구 바다에서 잡힌 참치의 신선한 맛을 음미한다. 그리고 어느새 인간은 외부에서 공급되는 에너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에너지 중독증'의 수렁에 빠졌다.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 탈것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에너지 없이 불가능하게 된 게 오늘의 삶이다. 만약 우리에게 에너지 공급이 중단됐다고 가정해 보자. 단 한 시간이라도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고층아파트 중심의 주거는 기능을 멈출 것이고 다양하고 풍족한 밥상 또한 오래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아침 식탁에 오른 음식물 대부분이 전 지구적으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모든 게 기실은 석유덩어리라고 해도 새삼스럽지 않을 것이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경고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인류가 지난 백 년 남짓 사용한 에너지는 지구가 수백만 년 동안 축적해 온 열량을 빼내 쓴 것이나 다름없다. 에너지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전문가들은 지구상의 석유를 비롯한 화석에너지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화석에너지 매장량은 넉넉하게 잡아도 수백 년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석유는 이미 '오일 피크'를 넘어섰다고도 한다. 거대한 커넥션을 구축한 원전 마피아들이 대안으로 떠벌리는 핵발전 또한 그 원료인 우라늄 매장량이 유한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에너지를 물 쓰듯 하는 중독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이나 국가나 에너지를 많이 쓰지 못해 안달하면서 경쟁적으로 사용량 늘이기에 급급하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에너지를 더욱 많이 소비하는 행태로 가고 있다. 주변에 속속 들어서는 초고층 주거공간만 해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유한한 에너지에 대한 위기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맹목적 성장 신화가 에너지 사용을 부추겨 왔다면 경제성장에 대한 생각도 바꿀 필요가 있다. 경제가 무한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맹신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대안적 삶과 대안적 가치를 마련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공적 영역에서 에너지 절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어쩌면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에너지의 '블랙아웃' 상태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요행히 우리가 그 재앙을 피한다고 해도 우리 후손들이 머잖은 장래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을 게 분명하다. 소비 중심의 에너지 사용 행태는 당장이라도 바꿔야 한다. 에너지를 더는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과 후손의 미래를 벼랑으로 밀어내는 범죄행위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