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장마철에 부실한 옹벽을 바라보는 심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조마조마하다. 지난주에는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와 김학의 법무차관이 사퇴했고, 이번 주 들어선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물러났다. '비리 백화점'으로 지탄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던 김병관 후보의 뒤늦은 퇴진은 허무 개그를 연상시킨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다"는 그의 사퇴변에 국민들은 분노보다 허탈감을 느낀다. 새로운 진용으로 출범해야 할 새 정부는 한 달이 넘도록 인사 파문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총체적 부실'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실패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에서부터 예고됐다. 실제적으로 새 정부의 첫 공직 인선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지만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애초 보수 편향이 문제가 됐던 이 후보자에게 비리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공직자의 자질에 흠결이 될 전력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서도 버티기로 일관한 그의 독불적 태도가 파행적 인사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이 후보자의 적격성 논란 가운데 돌출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새 정부의 구멍난 인사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다.
해외에서 스카우트해 온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현장에서 발탁한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연거푸 사퇴하면서 새 정부 인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성접대 의혹에 휩싸인 김학의 법무차관이 물러나면서 파행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도마에 올랐다. 거듭된 인사 실패는 새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려 국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취임 한 달,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4%에 그쳐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의 첫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적잖았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초래한 '고소영 인사'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이라는 짐작에다 박 대통령이 내건 '대탕평'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시 출신의 관료, 특정학교 인맥이 중용되는 코드인사가 재연되면서 대탕평 인사는 일찌감치 물 건너 갔다. 물론 어느 정부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를 강조하지만 실행 과정에서는 그렇지 못해 불협화음이 터지고 낙마하는 사례가 나온다. 하지만 새 정부 인사파행 양상은 심각하다. 차관급 이상 고위직 후보자와 내정자가 7명이나 낙마했고, 청와대 비서진까지 합하면 무려 12명에 이른다.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부 첫 내각의 면면들은 공직자로서의 자질에 문제를 드러냈다. 인사청문 대상 중에 단 한 명도 도덕성과 자질 논란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었다. 위장전입, 세금탈루에다 전관예우 의혹까지 등장했다. 온갖 의혹과 특혜를 누렸던 인물들의 재등장은 국민들의 눈높이를 벗어난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무기수입 업체 고문 역을 했던 이가 국방장관 후보로 발탁되고 거대 로펌에서 재벌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던 이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될 수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인사가 망사'돼 불신을 받게 된 데에는 박 대통령의 독단적 리더십이 작용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이 문제라는 것이다. 박근혜식 인사 스타일은 수첩에 기록된 인물평을 근거로 인선한 뒤 발표 직전에 본인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발탁하고 공개적으로 검증하기보다는 대통령의 독자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수첩 인사'가 부른 참사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정, 특히 인사는 독선과 독단으로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대통령 혼자서 판단하고 자신의 생각이 다 옳다는 만기친람형 국정운영은 박정희 시대에나 가능했던 통치술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실패한 인사를 하나하나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인사청문회 탓이나 하는 협량을 벗어나 국민들이 왜 실망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여당에서조차 인사실패와 관련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필요성을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일방주의적 국정운영은 국민과 불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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