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은 주말마다 흙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생태귀농학교 수업 중 하나인 귀농현장탐방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밀도 있는 현장탐방은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귀농자들의 삶에서 귀농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세계관을 혁신하는 일임을 새삼 확인합니다. 그들의 삶에 잠시 동승해 땅을 밟고 부드러운 흙의 촉감을 느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여 일하는 동안 도시생활의 찌꺼기들이 연소하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됨을 느낍니다.

최근 들어 귀농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거칠고 소모적인 도시를 벗어나려는 이들,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 은퇴 뒤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지난해 무려 4만 세대가 농촌으로 향했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생계에 쫓긴 귀농자가 1만4000세대였던데 비춰 본다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지요. 이 같은 귀농 러시는 1960·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먹고살기 위해서, 자식교육을 위해서 꼬리 물었던 이농 행렬만큼이나 의미가 큰 사회적인 변화입니다.

귀농은 단순히 개인적 삶의 변화나 산업의 재편을 넘어서 문명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생존방식, 석유를 기반으로 한 문명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자원의 고갈로 인한 성장의 한계,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노동의 종말, 파편화된 개인과 무너진 공동체 등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깊은 병증을 치유할 가장 확실한 대안은 농업으로 돌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10여 년 전에 소농이야말로 문명의 위기를 넘어갈 수 있는 해법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 귀농지 탐방에서 저의 오랜 신념을 더욱 굳힌 셈이지요.

농업정책도 소농을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마땅합니다. 산업화라는 미명 아래 농업공동체마저 시장의 경쟁으로 내모는 성장 중심의 농정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기업농 육성정책은 소농을 몰락시키고 명맥만 유지해 오던 농촌공동체마저 붕괴시켰습니다. 효율만 앞세운 농업의 규모화는 농촌을 공동화시키고 농민 삶의 질을 떨어뜨렸습니다. 과거 해마다 늘어나던 농가소득이 2008년 3052만 원에서 2011년에는 3015만 원으로 절대액조차 줄었습니다. 도시근로자가구소득에 대비한 농가소득 또한 2008년 65.2%에서 2011년 59.1%로 격감했습니다. 최저생계비 이하 절대빈곤층 비율은 2008년 14.9%에서 2011년 23.7%로 가파르게 치솟았습니다.

앞으로 박근혜정부가 어떤 농정을 펼칠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엇이 농촌을 살리고 농업의 근본을 지켜내는 길인지부터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지요. 농업을 경제성장을 위한 불쏘시개로 쓸 게 아니라 '농(農)'적 가치를 온전히 되살리는 데 온힘을 기울여야 한단 말입니다. 어설프게 '창조농업'이 어쩌니 하면서 산업적 측면에 치중하면 실패를 답습하기 십상입니다. 소농을 중심으로 농촌의 실핏줄을 되살려 빈사지경의 농업을 되살리는 정책이 실현돼야 할 겁니다.

농산가공의 확대를 통한 자본 중심의 농정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도농 간 인적 연대, 친환경 무상급식을 통한 로컬푸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우선돼야 합니다. 그래야 농업이 건실화되고 소농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농촌의 교육과 의료 환경 개선을 통한 '새 피' 유인책도 절실히 요청됩니다. 1990년대 후반 광우병사태를 겪은 유럽은 일찌감치 유기소농을 육성하는 쪽으로 농정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거대 농업에 천착해 오던 미국 역시 오바마 정부 들어서 소농 육성에 농정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길 바랍니다.

귀농 현장에서 귀로에 오를 때 차창으로 다가오는 산야의 풍경에서 봄 기운이 매번 깊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자연은 우주의 이치에 순응한 채 또 한 번 겨울을 이겨내고 온천지에 생명의 기운을 가득 차게 합니다. 초목들은 연둣빛 잎새와 갖가지 색깔의 꽃송이를 피워 올리면서 한바탕 축제를 펼칩니다. 이 아름다운 봄 정경에서 온전한 삶을 위해 흙으로 귀환한 이들의 맑고 선한 미소를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