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섰습니다. 밥상 위에는 방금 지어낸 밥과 반찬들이 그득합니다. 그사이에 꽃 한 가지와 정화수도 한 그릇 자리를 잡았고요. 방 안은 금세 가마솥으로 지은 현미밥의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찹니다. 쑥국과 무나물, 콩나물, 잡채, 쑥갓두부무침, 파래전, 김부각, 고추장아찌, 무김치 등 정갈한 반찬들이 군침을 돌게 합니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밥을 바라봅니다. 이제 몸속으로 들어가 우리 자신이 될 음식들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한살림 구서매장의 '공간 오래'에서 부산한살림 4월 월례회가 열렸습니다. '새 봄, 움트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모임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조합원 자녀들이 동요를 부르면서 막을 올렸습니다. 뒤이어 모임에 처음 나온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기다려마지 않던 밥모심이 시작된 것이지요.

밥모심 의식은 밥을 향한 참가자들의 절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밥이 있기까지 자연의 도움에서부터 농부들의 정성에 이르는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감사의 절입니다. 세 번의 절을 마친 참가자들은 밥상 위에 올렸던 정화수를 조금씩 나눠 마십니다. 밥을 모시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것입니다. 의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각자의 쟁반에 밥과 반찬을 덜어 낮은 상에 마주앉습니다. 삼시세끼 늘 먹는 밥, 태어나서 지금까지 먹어왔던 밥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숟가락을 뜹니다.

밥은 생명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생명이 생명을 먹는 것이고, 하늘이 하늘을 먹는 일입니다. 햇볕과 바람, 비,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 등 우주를 움직이는 자연의 조화가 빚어낸 밥입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과 반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또 하나의 생명이었습니다. 다른 생명을 위해 바쳐진 생명, 우리는 그 밥의 거룩함을 음미하면서 밥을 먹습니다. 밥상이 차려지기까지 애쓴 농부들과 많은 이들의 정성을 떠올리면서 천천히 밥알을 씹습니다. 이날 저녁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한 50여 명이 곱씹었던 밥의 의미는 바로 생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밥을 너무 소홀하게 대해 왔습니다. 밥을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상품의 한 가지로 바라봅니다. 마치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휘발유가 필요하듯이 밥도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 정도로 취급합니다. 유치원생부터 오로지 남을 밟고 서야 성공할 수 있는 무한경쟁의 시대, 돈이 모든 것의 잣대가 되는 세상에서 밥이 천대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밥상은 갈수록 황폐해집니다. 현대인의 밥상을 죽음의 밥상이라고까지 합니다.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었는지도 모를 음식물이 밥상에 오릅니다. 독한 농약과 비료로 범벅이 된 밥,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로 키운 밥들이 판을 칩니다. 심지어는 유전자를 조작한 밥이 오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상품이 되어버린 밥,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 밥이 몸속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몸을 망칩니다. 해충처럼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습니다.

밥에 스민 우주의 기운과 밥을 위해 바친 농부의 정성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밥이 몸속으로 들어와 뼈와 근육, 핏줄과 신경, 생각과 사상을 이룬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밥을 무시하고 자연을 하찮게 여기니 우리 삶이 온통 문제투성이가 되는 게 아닙니까. 아파트의 평수를 늘리는 데, 자식의 과외를 위해서, 그리고 유흥을 위한 생활에 밥의 순위는 뒷전으로만 밀려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밥 없이 우리가 생명을 보전할 수 있나요. 천대받는 밥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일이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사는 길입니다. 한살림 조합원들이 월례회에서 밥모심을 하는 일이야말로 삶을 성찰하고 정화하는 일입니다. 밥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을 바라며 밥모심 발원문의 일부를 옮깁니다. '한울이 다른 한울을 먹는 밥을 모시는 일은 다른 한울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밥을 모시는 일은 다른 한울과 더불어 서로 살리고 서로 사는 일입니다. 밥을 모시는 일은 그래서 뭇 생명을 살리는 축제입니다'. 부디 오늘 아침 밥상이 축제가 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