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세상 가득합니다. 길거리와 교정의 나무들은 팔을 활짝 벌린 채 연둣빛을 뿜어냅니다. 이즈음의 날씨는 풋풋하고도 따사롭습니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나날입니다. 신생의 활력이 넘실거리는 이 계절은 인생으로 치자면 어린이나 청소년의 시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5월을 청소년의 달로 정한 것도 그런 연유겠지요. 그제는 어린이날이었습니다. 맑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절로 행복해질 것 같은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 좋은 계절에 그들의 표정은 어둡고 마음은 무겁습니다.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스물세 나라 중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년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니 사는 게 고통스럽겠지요. 초등학생은 일곱 명 중에 한 명꼴로, 고등학생은 네 명 중 한 명꼴로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어른들 탓입니다. 자식을 오로지 공부에 얽어매는 부모의 가당찮은 욕심이 아이들을 병들게 합니다. 모든 것이 성적순으로 귀착되는 세상에서는 일등을 빼고는 모두가 실패자일 뿐입니다. 일등을 위해 모두가 희생되는 구조, 빗나간 교육의 틀에 아이들을 꿰맞추기 위해 부모들은 온갖 걸 동원합니다. 자식의 자유를 가두고 휴식을 속박합니다. 좀 더 배우고 생각이 있다는 부모도 자기 자식의 교육문제 앞에서는 이성을 잃습니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한 살짜리부터 사교육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린이집에서 기저귀를 찬 5~6개월짜리 젖먹이가 영어 플래시 카드 학습을 한다는군요. 엄마들은 영어단어를 곧장 따라하는 아이들이 대견해 어쩔 줄 몰라 한답니다. 애완견 훈련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요. 뇌도 제대로 발육되지 않는 갓난아이에게 영어학습이라니, 도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몸이 다양한 영양을 섭취해야 제대로 발육하듯 아이들도 다양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 사람의 건강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지덕체를 골고루 가르쳐야 한다고 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의 교육은 어떻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오로지 성적만 강조합니다. 예술적 감수성도 체력을 키우는 것도 아예 관심밖입니다. 인성교육이라는 구호만 요란하지 정작 그게 뭔지도 모르는 게 어른들입니다. 인성도 학원에서 돈을 주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그들입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꿈을 의사나 변호사로 가둬 버립니다. 의사나 변호사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학습하는 로봇으로 사육합니다. 경제적으로 무리를 하더라도 내 아이를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 수만 있다면 하고 안달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남을 짓밟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세뇌시킵니다. 나 이외의 모두가 경쟁해야 할 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놀이를 잊어버렸습니다. 꿈을 나눠 가질 친구들도 없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아이로 키웁니다. 아이에게 돈을 쏟아 붓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사육당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모든 걸 의존합니다. 뒤늦게야 다 큰 자식이 늙은 부모의 등에 빨대를 꽂고 사는 세태를 한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자식들을 그런 괴물로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날은 365일 중 단 하루, 어린이날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생긴 게 아닙니다. 다 부모의 욕심 탓입니다. 빗나간 교육열망이 아이들을 절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닭장 속의 닭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가둬두고 학습기계가 되기를 강요하면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창의성과 사회성을 기대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동학에서는 아이들을 하눌님처럼 모시라고 합니다. 자식도 하나의 인격체로 생명으로 우주로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을 볼모로 잡은 어른들의 빗나간 욕망을 내려놓을 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