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른바 롯빠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논문이 있다. 21세기정치학회의 '21세기정치학회보' 23집 1호(2013년 5월)에 실린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지방) 정치학적 함의'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을 쓴 황영주 부산외대 외교학과 교수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전날 성적에 따라 기분이 변하는 야구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에 정치적 분석을 가한다.
이 논문은 정치적 대상을 인간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에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채롭다. '타자, 타석에 들어서다'는 서론에서 스트라이크 데드볼 도루사 번트 안타 더블플레이 파울볼 홈런을 거쳐 '타자, 홈을 밟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민의 흔적이 읽힌다. 그 속에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관련한 정치적 해석, 롯데 자이언츠와 부산 사람들의 정체성, 프로야구에 작동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다친다'며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을 조롱한 기성용 파문, '쩔뚝이'라는 전직 대통령 비하 표현 논란에 휩싸인 걸그룹, 국회 공전 사태를 몰고 온 '귀태' 파문 등 최근 막말 퍼레이드를 보면서 이 논문을 다시 읽었다. 롯빠라는 커밍아웃에 꽂혔고, 프로야구를 정치학이라는 그릇에 담았듯이 살인에까지 이르는 인터넷에서의 막말에 관한 정치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롯빠에 '짐작건대 이 용어는 롯데의 빠순이의 준말일 것이다. 이때 빠순이는 인기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광적인, 열광적인 여성팬을 지칭하는 비속어이다'고 주를 달았으나 이 논문에서 롯빠가 비속어라는 느낌을 찾을 수 없으며 그것은 사직야구장은 물론 롯데 자이언츠를 둘러싼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일 밤 부산 해운대에서 발생한 30대 여성 살인사건은 막말 퍼레이드의 정점이었다. 광주에 사는 30대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피해자의 부산 집까지 찾아와 흉기로 피해자를 찔러 살해했다. 경찰은 과도한 신상털기와 막말에서 범행 동기를 찾았다.
이들이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고받았을 말들을 짐작해본다.
노빠, 노가리, 홍어× 좌빨 등속이 일방을 매도하는 막말이라면 반대편에는 쥐박이, 땅박이, 그년 보꼴 등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이 막말들은 갈등과 증오를 증폭시키며 편협된 틀 속에 사람들을 가두는 데 일조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설득보다는 저주가 앞선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11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이 그 궤를 잇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 귀태'이니 논리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17일 경찰에 붙잡힌 부산 해운대 30대 여성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지난 23일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는 2~3일씩 인터넷 사이트에 몰입했으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며 "온라인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치 눈가리개를 한 채 골인 지점을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이 사건의 가해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좇아가지 않았을까. 인터넷 사이트에서의 이견이 실제 물리적인 충돌로 비화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일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 지점에 정치의, 정치인의 역할이 있다.
인터넷에서 오간 막말이 멀쩡한 사람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되는 세상이다. 이제 이 문제를 정치권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울 때이다. 더 늦어지면 어느 동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까지, 아니 프로야구를 둘러싼 환경까지 끌어안는 정치, 그것의 목적은 공동체 형성과 갈등의 조정이라고 정치학 교과서에 적혀 있다. 이를 각성한다면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외치는 '존경하는 국민' 중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가해자와 피해자 신세로 전락하지 않도록 건전한 인터넷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뉴스부장